Posted on 2010.12.16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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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금요일 저녁 11시만 되면 방송했던 청춘불패가 다음주를 마지막으로 폐지가 된다. 물론 시청율때문에 폐지가 된다고는 하지만 왠지 아쉬운 마음이 든다.

좀 더 아쉬운 건 송은이 들어온지 얼마되지 않았는 데 폐지라니!!!

왠 날벼락인가 쿠궁 보는 내가 안타깝다


솔직히 청춘불패 1기때가 더 재미있기는 했다. 나만의 생각일 수 있지만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써니~텐이 있었기때문이다.

그런데 그녀들이 떠나면 누가 그 빈집을 지키게 될 것인가?

그냥 관광명소로 그대로 둘것인가?

관광명소가 된다고 해도 지금당장은 괜찮을 수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폐가가 될 텐데 폐가가 될 바에는 다른 사람에게 파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어떤 프로그램에서 여걸들이 한곳에 모여 진행하는 리얼버라이티를 볼 수 있는 날이 올까 다른 방송국에서 하는 것도 봤지만 왠지 청춘불패가 더 끌린다.


인지도 없는 그룹들도 청춘불패나오고 대박 난 것 같던데 그녀들이 더 아쉬워할 것 같은 생각도 든다.

이젠 매주 금용일 무슨재미로 티비를 본다니 그녀들이 왜치는 " 청춘은 지지 않는다 " 이 말이 당분간 계속 멤돌것 같다

Posted on 2010.07.05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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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저녁 단편적 뉴스와 짧은 다큐멘터리로 세계정세를 알려 주던 MBC 의 <W> 진행자가 최윤영 아나운서에서 배우 김혜수씨로 교체된다는 소식입니다.
<W>는 2005년 4월에 첫 방송을 시작했으며 5년 동안 최윤영아나운서의 진행으로 국제사회 속에서 억압받거나 소외되고 전쟁,기아등에 의해 고통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잔잔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성차별에 고통받는 이슬람 권 세계의 여성이야기,내전에 죽어가는 소수민족들의 이야기,기아와 질병에 신음하는 아프리카 아이들 이야기 까지 ..<W>는 세계속의 우리라는 모토로 고통받는 그들과 우리가 무관하지 않음을 지속적으로 이야기 해 왔습니다.
그 동안 <W>는 시청률과 상관없이 우리나라 방송역사에 의미있는 발걸음을 해 왔다고 평가되고 있습니다.기존에 해외정보나 뉴스가 서방,특히 미국에서 일방적으로 대량으로 제공되는 자료를 전달하는 것에 그친 반면 <W>는 국제정서를 우리의 시각으로 재해석해서 시청자들에게 전달한 점에서 진일보한 방송문화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특히 화면에 방영되는 영상은 더더욱 서방 언론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으나 <W>는 이를 과감히 탈피하고 직접 발로 찾아다니며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와 영상을 화면에 담았습니다.

World-Wide-Weekly

W는 World-Wide-Weekly의 첫 글자 W를 대표하는 것으로
W가 국제 분야라는 새로운 영역에서 MBC의 공영성을 대표할
수 있는 시사 프로그램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    출처 : imbc.com


이러한 시사 전문 프로그램에 배우인 김혜수씨가 진행자로 결정되었다는 것에 사람들은 다소 의외라는 반응과 걱정을 동시에 느끼게 됩니다.물론 <그것이 알고싶다>와 같은 시사 프로그램에서 배우가 진행을 맡은 경우가 있었으나 <W>와 같이 여러 시사뉴스를 같이 전달해야되는 성격의 프로그램에서는 전례가 없는 일이라 사람들의 우려감을 불러 일으킬 수 도 있습니다.
일례로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개그우먼 김미화씨는 프로그램 초기에 쏟아지는 불신과 무시를 극복하기 위해서 본인 스스로 엄청난 노력을 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배우라고 해서 시사프로그램의 진행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때로는 난해하고 복잡한 문제들을 친근감있게 더 잘 전달 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질 수 도 있습니다.하지만 사람들은 비전문가에 대한 선입견을 가질 수 있습니다.특히나 얼굴마담식의 , 작가가 작성한 방송원고만을 읽는 진행이 된다면 진실성을 전달해야 하는 시사 프로그램으로서는 결정적 약점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김혜수씨가 남다른 노력을 해야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일반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제기되는 문제에 대해 본인 스스로가 정확히 이해하고 절실하게 느껴야만 비로소 제대로 전달이 될 것이고 사람들의 편견을 깰 수 있을 것입니다.

평소 김혜수씨는 순발력과 민첩성으로 진행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고 합니다.
또한 이번 <W>의 진행도 본인이 평소에  시사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이 꿈이었기에 너무나 기쁘다고 합니다.그 기쁨이 오래도록 지속되기 위해서는 비전문가라는 태생적 약점을 극복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그렇게 되면 보다 많은 재능있는 사람들이 분야를 넘어 활약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데 일조를 할 것입니다.

꾸준히 노력하는 모습 . 김혜수씨의 <W>가 기다려지는 이유입니다.


Posted on 2010.07.04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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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16강전에서 우르과이에게 아깝게 2:1로 석패를 한 후 월드컵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조금 멀어진 듯 합니다. 여기에 8강전 부터는 경기수도 줄어들어 매일 3게임씩 월드컵 축구를 볼 수 있었던 예선전과는 달리 띄엄띄엄 경기가 있다보니 더더욱 관심이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어찌보면 이제 진정한 축구팬들만 남아서 월드컵을 즐기고 있다고나 할까요? ^^
이러한 월드컵 즐기기에 하나의 맛깔나는 양념같은 이벤트가 있었는데 바로 차-차 부자의 독일:아르헨티나 경기 공동해설이었습니다.

차두리 선수는 이번 월드컵에서 아마도 가장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은 선수가 아닐까 합니다.
여전히 지칠 줄 모르고 그라운드를 누비는 그의 모습에 <차두리 로봇설>이라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인터넷에 회자 되었고 허정무 감독의 전술적 선택에 의해 아르헨티나 전에서 제외되고 4:1이라는 대패를 할 때에는 인맥에 의한 축구라는 등의 온갖 음모론이 난무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16강전에서 패하고 그라운드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차두리 선수의 모습에 국민모두가 같이 아쉬워 했습니다.


차두리 선수에 대한 최근 이슈는 바로 기성용선수가 소속되어 있는 스코틀랜드의 셀틱 팀으로의 이적 소식입니다.월드컵이 시작되기 직전 차두리 선수는 현재 뛰고 있던 독일의 프라이부르크와 계약이 만기가 되었음에도 연장을 하지 않아 자동으로 소속팀이 없는 선수로 남게 되었습니다.차두리 선수는 일단 월드컵에 참가하는 것에 주력하겠다고 이야기했고 간간이 국내 복귀 (엄밀히 애기하면 국내에서 프로팀을 뛴 적이 없으니 복귀는 아니겠죠^^)를 이야기 하기도 했습니다. 우연히도 아버지인 차범근 감독도 월드컵 직전 수원 삼성팀의 감독을 사임하여 부자가 모두 실업자가 되는 상화이 연출되기도 했습니다.
이때 차두리 선수는 국내에 복귀해 아버지와 같이 뛰고 싶었는데 이젠 그럴 수도 없게 되었다고 농담으로 이야기 한적도 있었습니다.

차-차 부자 공동해설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라는 것은 다들 잘 알고 계실 겁니다.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국가대표로 선발되지 못해 월드컵에 참석하지 못하게 된 차두리 선수는 아버지와 같이 MBC에서 몇개의 게임을 공동 해설 하게 됩니다.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는 독일에서 열리는 월드컵에 뛸 수 없게 된 차두리 선수...아마도 아쉬움이 많았을 것입니다. 이런 아쉬움을 뒤로 하고 독일 현지의 인맥과 현역 선수로 뛰고 있는 경험을 바탕으로 맛깔스러운 해설을 해서 당시에도 사람들로 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번 독일:아르헨티나 전의 공동해설은 약간은 의외였습니다.
2006년에는 대표팀으로 뛸 수 없어서 가능한 일이었지만 지금은 당당히 대표팀의 일원으로 첫 원정16강을 이루어 낸 선수인데 해설이라니...일각에서는 한국팀이 조기에 탈락할 것을 예상하고 SBS에서 공동해설을 준비한 것이 아니냐라고 비난의 목소리가 있기는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차두리 선수는 월드컵이 끝나고 곧바로 셀틱의 메디컬 테스트를 받았으며 입단이 확정되고 귀국하는 길에 남아공에 들렀고 공동해설을 하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즉 월드컵 시작 전 부터 미리 계획된 것은 아니라는 거죠.이러한 깜짝 이벤트가 우리나라가 탈락해서 다소 시들해 졌던 월드컵 관람에 맛깔나는 양념이 되었습니다.
축구해설의 구성상으로는 차범근-차두리 부자의 해설은 궁합이 잘 맞는 거 같습니다.
아버지는 오랜 감독생활에서 얻어진 전체적인 팀 전술과 경기 전반적인 운영에 대해 해설하고 아들인 차두리 선수는 현역선수의 경험에서 나오는 세밀한 동작과 선수입장에서의 경기 해설이 조화가 잘 이루어 졌다고 생각합니다.특히 평소 독일 리그에서 같이 뛰던 선수 개개인의 습성,장점 등을 잘 설명해 주어 경기를 보는 즐거움을 한층 배가 시켰습니다.차두리 선수는 현재 호나우도 선수가 가지고 있는 월드컵최다골 기록을 깨기위해 노력 중인 독일의 클로제선수와의 친분도 과시하며 우리가 평소 알지 못했던 클로제 선수의 인간적인 면도 소개해 주었습니다.또한 자신의 어릴 적 별명이 라커룸에서 하도 떠들고 다녀서 <라디오>였다는 재미있는 일화도 소개해 주었지요.


차두리 선수의 해설을 보면서 10년 후 쯤의 차두리 선수를 상상해 보았습니다.
그 때 쯤이면 현역 선수로는 뛰기 힘들 것이고 (물론 지금의 체력상태라면 그 때도 어쩌면 가능할 지 모른다는 재미있는 상상이 들기도 하지만 ^^) 아마도 지도자의 길을 걷거나 해설자의 길을 걷고 있을 것입니다.어려서 부터 독일 리그에서 뛰었던 경험과 인맥이라면 우물안 개구리가 아닌 세계 축구의 흐름을 잘 파악하는 그런 지도자 내지는 해설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차두리 선수가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된다면 개인적으로는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독일이 가장 유력하겠지요) 부터 지도자 길을 시작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그래야 세계축구에 대한 감각을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을 테니까요.
선수로서 경험을 쌓았듯이 지도자로서도 차근 차근 경험을 쌓게 된다면 충분히 아버지의 명성을 능가하는 감독으로서의 재질을 보여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국가가 그를 부를 수 있을 때 자랑스럽게 후배들을 이끌고 월드컵에 참여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럼 세계언론들은 이렇게 이야기 하겠지요.아버지의 뒤를 이어 월드컵에 선수로 참여하고 감독으로 참여한 최초의 축수선수, 감독이라고.

경기가 끝나고 아나운서가 새로운 팀으로 이적하는 아들에게 한마디 해달라는 애기에 수줍게 말하던 차범근 해설의 이야기를 저도 차두리 선수에게 해 주고 싶습니다.

"차두리 화이팅 !!!"


Posted on 2010.07.03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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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저녁이면 Girl Group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TV 앞으로 불러 모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KBS에 방영되고 있는 <청춘불패>가 바로 그 프로그램 입니다.
청춘불패는 걸그룹 7명이 주축이 되어 농촌생활을 체험하는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입니다.걸그룹 멤버들이 모여 학교나 사회에서 배우지 못하는 인생경험을 농촌생활을 통해 배워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마치 <1박2일> + <체험 삶의 현장> + <패밀리가 떴다>를 합쳐놓은 듯한 느낌입니다. 
일반적으로 걸그룹 멤버들은 그나이 또래의 보통의 아이들과는 달리 학교 생활이나 일상생활에 있어 많은 다른 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살면서 할 수 있는 평범한 경험들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런 걸그룹 멤버들을 모아 도시에서는 경험해 볼 수 없는 농촌의 일상생활을 체험하면서 실수를 하고 이를 극복하는 청춘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자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기획의도 인 것 같습니다.



횟수를 거듭하면서 이러한 기획의도가 어느정도 시청자들에게 어필을 하는 모습입니다.
평소 TV에서는 볼 수 없었던 아줌마 패션 (몸빼바지와 밀집모자)의 걸그룹 모습도 신선했고 꾸미지 않은 일상생활 속의대화 내용도 웃음을 지어내게 했으며 무대에 섰을 때와는 다른 , 어딘지 망가져 보이는 모습도 귀여웠습니다.
또한 각자 개성있는 캐릭터를 하나씩 만들게 되었는데 예를 들어 소녀시대의 써니는 개그돌로 그리고 나이가 다른멤버에 비해 많은 나르샤를 성인돌로 선화는 백지선화로 그리고 늘 어색하고 통편집을 자주 당하는 효민은 병풍효민.....
이렇게 각자의 독특한 모습을 어느정도 사람들에게 인지시키는 단계에 이르게 된 것이지요.
그러면서 금요일 심야시간에 방송되는 예능프로그램으로는 괜찮은 10%정도의 시청률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어느정도 안정적인 포맷으로 진행되던 프로그램에 얼마전 변화가 생겼습니다.
출연 멤버였던 소녀시대의 써니와 유리 그리고 포미닛의 현아가 하차를 하고 새로이 김소이,주연(애프터스쿨),빅토리아(에프엑스)가 새로운 멤버로 가세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면서 초반에 시간을 들여 멤버간의 서먹함을 없내는 과정이 다시 시작되게 되었고 새로운 멤버로 가세한 인원에 대한 온라인 상의 잡음도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제작진은 멤버변경이후 두번째 방송에서 새로 가세한 멤버들의 눈물이 담긴 진솔한 이야기로 일부 사람들의 오해를 풀기 위해 노력했으며 어떻게든 빠른 시간내에 안정화를 가져오기 위해 여러가지 아이템을 고심 중인 것 같습니다.
(지난 금요일 방송 된 새 멤버를 주축으로 한 요리대결 맛대맛도 이러한 의도 인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노력에도 불구하고 매주 관심을 가지고 있던 프로그램이기에 멤버변경 후의 모습에 약간은 우려감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물론 멤버가 바뀌고 얼마 되지 않아서 이겠지만 어딘지 모르게 어수선한 분위기라든지 이전 멤버들에게서보여지던 꾸미지 않는 순진함이 덜한 듯 합니다.
아시다 시피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은 사실성이 생명이기 때문에 상황이나 대사를 억지로 꾸미기 시작하면 방송의재미가 급격하게 떨어지게 됩니다.새로운 멤버의 빠른 적응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약간은 의도적인 연출이 필요하더라도 조금은 도가 지나치는 것이 아닌 지 하는 우려가 듭니다. 그리고 이러한 우려는 <청춘불패>의 현재의 모습과 종영이 결정된 SBS의 <패밀리가 떴다2>를 오버랩하게 합니다.

패밀리가 떴다는 국민남매로 사랑받던  유재석,이효리의 하차 이후 시즌2란 이름으로 새로운 멤버를 구성하여
출범하였습니다. 중량감이 떨어지는 출연진들의 약점을 만회하기 위해 택연,조권,윤아,김희철 등의 아이돌 스타들을 대거 투입하였으나 이전 명성을 계속 유지하기는 힘들었고 여기에 약간은 억지스러운 택연과 윤아의 러브라인도 사람들로 부터 반감을 사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유재석과 이효리 정도의 강력한 구심점이 없다는 약점을 극복하지 못하며 프로그램의 폐지가 결정되었습니다.

물론 포스트 제목을 좀 자극적으로 달았지만 <청춘불패>가 아직 그정도의 위기가 발생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멤버들교체 후 약간의 어수선한 분위기는 예상하고 있었고 이것은 어찌보면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이 될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리얼리티 예능프로그램의 생명인 꾸미지 않는 모습이 사자져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멤버들의 빠른 동화를 위해 조급한 마음에 억지스럽게 프로그램을 꾸미기 시작하면 당초의 기획의도에서 벗어나서 시청자들에게 반감을 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멤버들이 잘 어울리지 못하고 서먹서먹한 것도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리얼리티가 충분히 될 수 있고 그런 점들이 극복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청춘불패>를 보는 또 다른 즐거움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무쪼록 새로운 멤버들이 청춘불패에 잘 적응하고 자신들의 개성있는 캐릭터를 만드는 것에 성공해서
<청춘불패>를 즐겨 보는 시청자의 입장으로 금요일 심야에 누릴 수 있는 작은 즐거움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입니다.

Posted on 2009.11.17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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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이 퇴장을 했습니다.
그동안 숱한 화제를 뿌리며 인기를 누리던 미실. 심지어 드라마 제목이 <선덕여왕>이 아니라 <미실세주) 이었어야 하지 않느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미실 역활이 드라마 <선덕여왕>에 미친 영향은 막강 했습니다.실제로 50회에 방영되었던 미실의 최후장면은 순간 시청률이 49.9%를 기록해 그 동안의 선덕여왕 시청률 중 최고를 기록했습니다.언론에서는 온통 미실에 대한 보도 뿐이고 사람들도 미실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자~ 이런 미실이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퇴장을 했습니다.하지만 드라마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드라마 제목이 <미실세주>가 아닌 <선덕여왕>이기 때문이지요.미실이 드라마에서 퇴장한 여파는 당장 시청률에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선덕여왕>은 17일 시청률조사기관 TNS 미디어코리아 집계 37.7%를 기록하며 전 회 42.3%보다 무려 4.6%나 하락했습니다. 이는 지난 주 미실의 죽음 직전과 죽음 당시의 9일 44.9% 10일 44.4% 이후 뚜렷한 하락세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선덕여왕>과 동시간대 방영된 KBS 2TV 월화드라마 <천하무적 이평강>은 6.2%, SBS <생활의 달인>은 5.8%를 각각 기록하며 미실이 퇴장해 다소 맥빠지기 시작한 <선덕여왕>을 서서히 압박하기 시작했습니다.물론 4~5%의 시청률 하락이 바로 사람들의 관심이 멀어졌다고 의미할 수 는 없습니다.
하지만 미실이 퇴장하면서 가져온, 어찌보면 예견된 하락세인 것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중심기둥이 빠진 <선덕여왕>의 다음 카드는 무었일까요?
<선덕여왕>작가진들은 미실이 퇴장한 이후의 드라마 전개 방향을 이렇게 애기했습니다.

< 덕만공주가 왕이 되기 위해서 미실세력과의 대결을 벌인 것이 드라마 중반부의 핵심이었다면 드라마 후반은 덕만공주가 어떤 왕의 길을 걸어가는지? 그리고 여기에 유신과 비담,춘추가 어떤 역활을 하며 돕게되는지?마지막으로는 유신과 비담,춘추가 어떤 방식으로 자신들만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대립하는 지를 보여주는 것이 드라마 후반부의 핵심이 될 것이다.>

실제로 드라마는 미실의 최후 과정이 지난 51회에서 빠른 극 진행을 보이며 미실이 드라마에서 빠진 아쉬움을 매우기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미실 사후 난을 빠르게 진압하는 모습과 덕만의 사람들인 유신,비담,춘추에게 각자의 임무를 부여하는 장면, 그리고 덕만이 왕에 오르는 장면까지...
사람들에게 미실의 공백에 대한 서운함을 생각하지 못할 정도의 빠른 진행을 보여 주었습니다.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과정에 사람들은 어리둥절 할 수도 있었지만 미실시대와의 단절을 빠른 전개를 통한 세월의 흐름으로 처리하였습니다.
여기에 칠숙의 비장한 최후 장면을 곁들여 사람들의 감정적인 감동을 자극하는 것도 잊지 않았고요.
여기에 52회 예고에서는 나이가 든 유신,비담,덕만(?) 의 모습을 보여주며 비담과 유신이 대립하게 될 것이라는 떡밥도 잊지 않았습니다.
 
52회에서는 상장군으로서 군대를 이끌고 전장에서 연승을 거듭하는 유신(엄태웅)과 여왕 직속 감찰기관으로 사량부를 통솔하는 비담(김남길)의 새로운 대립구조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에 비담의 복야회 문서 조작 등으로 인해 유신의 오른팔 월야(주상욱)까지 사령부에 끌려가 긴장감을 고조시켰지요.
덕만-미실의 대립구도를 대체할 갈등구조를 만들기 위해 비담-유신의 갈등구조를 만들었으며 이 갈등 구조의 상위에는 이를 통제하는 <선덕여왕>의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하지만 비담-유신의 갈등 구조는 이전의 덕만-미실의 갈등구조에 비하면 턱없이 초라해 보이는 구도 입니다.일단 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 원인이 되는 모티브가 너무 모자랍니다. 덕만-미실은 신국을 두고 주인이 되기 위한 싸움을 벌였습니다.그 싸움은 목숨을 포함한 모든 것을 걸고 하는 싸움이었기에 그 토록 절박할 수 밖에 없는 갈등이었습니다.
반면 비담-유신의 갈등구조는 주인이 정해진 이후 그 아래에서 벌어지는 권력다툼으로 비춰져 약간은 긴장감이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제작진은 이 갈등을 그대로 발전시켜 나중에 <비담,염종의 난>으로 이어가려는 의도로 보여지지만 비담이 미실의 아들이라는 태생적 원인으로만은 이 갈등을 유지,증폭시킬 수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그렇다면 이 갈등구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어떤 장치들을 사용하게 될까요?
아마도 유신,비담의 덕만에 대한 충성경쟁과 정인에 대한 연모를 가미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51회 마지막 장면에서 유신은 모든 것을 바치는 충성을 맹세했고 비담은 아낌없이 뺐는 사랑을 맹세했습니다. 이처럼 유신과 비담은 한 대상인 덕만에 대한 애정은 같으나 그 방식은 서로 다를 것이라는 사실을 유신-비담의 갈등구조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으로 사용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드라마 <선덕여왕>의 종반부를 장식할 이야기는 그 제목에서도 보이듯이 바로 <선덕여왕>이야기 이어야 합니다.
우리 역사상 최초의 여왕인 <선덕여왕>이 어떻게 왕이 되었으며 어떤 왕의 길을 걸었으며 그 왕의 길을 걷기 위해 얼마나 많은 개인적 행복을 포기해야 했는 지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역사상 최초의 여왕으로, 그리고 첨성대를 지은 여왕으로 기억되고 있는 <선덕여왕>은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행복한 삶을 살지는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후사를 위해 세명의 남편을 두었으나 결국 후사가 없었고 즉위 직전에는 여왕 즉위에 반대하는 <칠숙,석품의 난>이 있었으며 말년에는 상대등인 비담의 난 와중에 죽게됩니다.
실제로 여왕은 자신의 왕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많은 귀족들의 견제를 이겨야 했으며 이 때문에 많은 것을 또한 포기해야 했을 것입니다.이제 본격적으로 여왕의 시대를 연 드라가 <선덕여왕>은 고난의 길이었던 여왕의 길을 걸었던 선덕여왕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때 입니다.

Posted on 2009.10.26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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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라는 것이 한번 보고 좋았던 프로그램은 계속 보게 되나 봅니다.
일전에 부산 산복도록에 대해 3일동안 취재한 <다큐멘터리 3일>에 대해서 좋은 느낌에 포스팅을 한 적이 있었는데 지난 주에도 그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습니다. 일부러 챙겨 본것은 아닌데 요즘 토,일 주말 드라마가 딱히 마음에 드는 것이 없어서 여기 저기 채널을 돌리다가 "아 ~~" 하는 생각에 보게 되었습니다.
<다큐멘터리 3일>은 이번 주도 <길> 시리즈 였습니다.
이번엔 지리산의 <둘레길>이 시작되는 지리산 매동마을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 였습니다.
<둘레길>은 제주도의 <올레길>과 비슷한 지리산 자락의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던 옛길을 다시 복원한 도보 여행길입니다.지리산 둘레 3개도(전북, 전남, 경남), 5개시군(남원, 구례, 하동, 산청, 함양) 16개 읍면 80여개 마을을 잇는 300여km 중 현재 70km가 이어진 상태입니다.

이 길의 시작은 바로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에 위치한 <매동마을>에서 시작합니다.
(현재 매동마을의 홈페이지는 서버가 다운되었나 봅니다.트래픽 초과로 열리지 않네요.역시 방송의 힘은 대단한 것 같습니다. 매동마을 홈페이지 ==> www.maedong.org )

2008년 4월 지리산 둘레길이 열리면서 그 시작점인 매동마을의 모습도 많이 달라 졌습니다.
나이드신 어르신들만 농사일을 하던 마을에서 이제는 주말마다 둘레길 탐방을 위해 몰려드는 외지인들로 마을이 북적북적 합니다.
매동마을에서는 둘레길 탐방을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을 위해 마을에서 공동으로 민박을 운영하고 있습니다.마을 이장님이 주축이 되어 민박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예약을 받아 순서대로 마을 주민들의 집을 배정하고 있습니다.민박에 이용 될 집들은 탐방객들의 불편을 덜어 주기 위해 여러가지 편의시설등의 집수리를 하였습니다.

                              < 지리산 둘레길의 시작점인 매동마을 >

처음에는 다큐멘터리의 제목을 보고 지리산 <둘레길>을 소개하는 내용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 내용은 길에 대한 애기가 아닌 그 길의 시작점에 살고 있는 매동마을 사람들의 이야기 였습니다.이마을은 마을 인구의 1/10 이 귀농 가구 입니다.도시생활을 정리하고 시골로 와 농사를 지으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귀농가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나이드신 어르신 들입니다.
이 어르신 들에게 주말마다 찾아오는 방문객들과의 만남은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이 되고 있습니다.
마을 전체에서 하는 민박이라고 특별할 것은 없습니다.
정성껏 마련한 잠자리와 시골에서 많이 나는 것들로 꾸며진 식사가 전부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곳에서 마치 시골 고향집에 다니러온 자식들 같은 마음을 얻어갑니다.
민박을 마치고 떠나는 사람에게 밤새 삶아 놓았던 밤을 비닐 주머니에 담아 주시는 허리가 굽은 할머님.
민박 비용을 받으시고 그 자리에서 같이 온 아이들에게 용돈을 주신다면서 만원짜리 한장을 꺼내 아이들 손에 쥐어주시는 할아버지.담장 너머로 고개를 내 미시면서 떠나가는 손님들을 웃는 얼굴로 계속 쳐다보시는 할머니.

                                < 담장 너머로 떠나가는 사람들을 배웅하시는 할머님 >

어렸을 적 , 부모님과 함께 찾아뵙던 할머니는 헤어지는 날이면 어김없이 치마 속 주머니에 손을 넣으셔서 천원짜리 종이돈을 꺼내어 제손에 꼭 쥐어 주셨습니다.그것을 쌈짓돈이라고 한다는 것은 나중에 조금더 나이가 들어서 알았습니다.
할머니의 쌈지에서는 사탕,과자 그리고 돈까지 손주들을 위해 아껴 두셨던 많은 것들이 들어 있었습니다.민박 비용을 받으면서 그 자리에서 아이들에게 용돈을 쥐어 주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저는 어릴 적 그 쌈짓돈을 떠올렸습니다.지리산 둘레길을 탐방하는 많은 사람들도 그 길의 아름다운 풍경보다도 어릴 적 느꼈던 할머니,할아버지에 대한 정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는 것에 더 큰 만족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 쌈짓돈을 이제는 다시 받아 볼 수도 없고 그 고마움에 대해 아무것도 보답해 드릴 수 없게 된 지금의 저는 담 넘어 계속 바라보시던 TV 화면속의 할머님의 얼굴이 너무 정겨웠습니다.
다른 분들이라도 너무 늦기 전에 할머니,할아버지에 대한 고마움을 조금이나마 보답해 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Posted on 2009.10.19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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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부산이라는 도시가 각종 언론매체에 많이 보입니다.
정수근 사건 부터 최근 프로농구 KCC의 허재 감독 음주 폭행사건 까지...안좋은 일 부터 시작해서
관객 천만명을 넘은 해운대와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는 부산영화제와 같은 좋은 소식들 까지..
어찌보면 연일 부산을 배경으로 하는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물론 인구 삼백팔십만의 제2의 도시 이다 보니 여러 사건 사고와 많은 일들이 벌어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TV에서 이런 부산에 대한 생각을, 아니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을 조금은 진지하게 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바로 토요일 오후 9시40분에 KBS 1 TV에서 방영하는 <다큐멘터리 3일>입니다.<다큐멘터리 3일>은 그동안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나 이슈가 되었던 일들,장소 등의 3일간의 모습을 화면에 담는, 공간과 사람을 통해 세상을 알리고자 하는 프로그램 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국상 중 3일간을 취재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실제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던..촛불집회와 월드컵 응원전 등을 보여준 바로 그 프로그램 입니다.

이번주 <다큐멘터리 3일>의 주제는 바로 부산. 그 부산에서  길이 곧 인생이 되는 도로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부산항을 바라보고 있는 산등성이를 빙 둘러싸고 있는 도로, 부산시의 78개동을 거쳐 6개의 산복도로가 매일 100만명이 넘는 사람들과 마주치고 있습니다.

산복도로는 산의 중턱을 구비구비 돌아 가는 도로를 말합니다.
부산에서는 6.25 피난민들이 산 기슭에 집단 정착지로 거주지를 만들면서 이 거주지를 관통하는 도로가 생겨 났습니다. 사람들은 이 도로를 통해 바로 아래에 있는 부산 항만에서 부두일을 하러 가기도 하고 아이들은 학교에 다녔습니다.
화면에 보여지는 산복도로의 모습은 한마디로 사람과 건물,집이 한데 얽혀 있는 거대한 거미줄 또는 미로를 연상하게 했습니다.다닥다닥 붙은 집들이며 그 집들 사이의 골목길..그리고 그 골목에서 노는 아이들이나 햇빛을 쬐는 어르신 들의 모습.약간은 과거의 향수를 떠올리게 하는 모습들 속에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6.25때 이북에서 피난와서 거제도 수용소에서 살다가 부산에 정착하게 된 한 노인은 당시 김치한조각,죽 한 그릇도 같이 나누어 먹고자 했던 거제도 사람들에게 눈시울을 붉혀 가면서 감사인사를 했습니다.
미국으로 로스쿨 유학을 준비 중인 학생은 자신의 가난한 처지에 대한 불만을 묻는 PD의 질문에 담담하게 자신의 사정을 받아들이고 열심히 하면 될 거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호떡장사를 하며 자식들을 키워낸 노부부는 자신들의 집이 누추하다고 연신 말하면서도 그 집에서 함께 말년을 보내는 지금 모습에 행복해 하고 있었습니다.



눈 앞에 보이는 부산 시내와 부산항의 야경을 버릴 수 없어 이사를 가지 못한다는 할머님도 계셨습니다.
그렇게 땀 흘려 힘들게 살아온 우리 이웃들에게 산복도로는 때로는 희망으로 가는 길을 때로는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잠시의 휴식을 주는 골목길 계단으로 그 자리에 40년을 있었습니다.


돌아보면 우리 주변에는 늘 우리의 이웃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웃들과 함께 걸었던 길이 있었습니다. 그 길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우리의 부모님,우리의 할아버지,할머니를 만날 수 있습니다.그렇게 이어져 오늘날의 우리가 있는 것입니다.
부산항이 내려다 보이는 산복도로에서 오늘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우리 이웃들을 보게 된 것은 토요일 오후에 저에게 찾아온 행운이었던 것 같습니다.


Posted on 2009.10.13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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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선덕여왕이 덕만공주의 왕위계승 선언을 기점으로 그 동안의 아마츄어적 대결 구도가 드디어 왕위를 두고 벌이는 본격적인 정치 대결로 들어섰습니다. 이제 부터는 작은 사건(에피소드)에 대한 대결이 아닌 정말로 생사를 걸고 결과로 달리는 싸움이 되겠지요.
드라마를 보면서 문득 재미있는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미실이 덕만공주의 여자도 왕이 될 수 있다는 발언과 김춘추의 골품제는 폐지되어야 한다는 말을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생각하고 고민하는 장면 이었지요.그리고 나오는 미실의 한마디....

"새로운 시대가 오는 것인가?"


덕만공주와 김춘추의 말에 미실은 아마도 심각한 문화적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쉽게 애기하자면 세대차이를 절실하게 느낀 것입니다.수십년간 권력의 핵심에 있었으면서도 자신은 단 한번도 해보지 못한 생각들을 거침없이 쏟아 놓는 두 사람을 보면서 미실은 정신적으로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미실을 충격에 빠지게 한 이 두가지는 과연 그 당시 신라, 미실에게 어느정도의 절대적 진리였을까요?

남자만이 왕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장자상속이라는 문화적 배경에서 나온 것입니다.
어찌보면 원시사회의 모계 중심 사회에서 부계중심 사회로 변화하면서 만들어진 문화일 것입니다.
권력의 핵심에 늘 남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여자들의 이야기는 묻혀지고 전해지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역사를 뜻하는 영어 History의 어원이 History = His + Story 역사는 그 남자의 이야기라는 말도 있습니다.미실도 이러한 가치관에 철저히 길들여져 그 많은 능력과 사람들이 있었음에도 감히 왕이 되고자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역사는 늘 발전하는 법.
우리나라 최초의 여왕이 만들어지기 전에 이웃 일본에서 이미 여왕이 왕위에 오른 적이 있습니다.
시대적으로 보아 당시 진평왕이 선덕여왕에게 왕위를 물려 줄 때 이웃나라인 일본에서의 이런 전례를 들어 귀족들의 반대를 물리쳤음 직도 합니다.
일본에서는 593년 당시 외척이었던 소가노 우마코가 당시의 일왕을 암살하고 자신의 딸인 스이코를 일본왕으로 추대합니다.하지만 모든 권력은 쇼토쿠대자가 섭정을 하게되고 스이코 왕은 꼭두각시 노릇만을 하게 됩니다.꼭두각시 왕일 지라도 이웃 일본에 여자가 왕이 되었다는 소식은 당시 교류가 많았던 신라에서도 알게 되었을 것이고 이러한 사실은 새로운 가치관을 만들수 있는 배경이 되었을 것입니다.


미실을 구속한 또하나의 진리 바로 신라의 골품제는 신라시대 혈통의 높고 낮음에 따라 신분을 구분한 제도이며 왕족을 대상으로 한 골제(骨制)와 귀족과 일반백성을 두품제(頭品制)로 구분하였습니다.
하지만
신라의 이런 골품제는 다른 시대의 신분제도와는 약간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고려나 조선에서의 신분제는 왕으로 부터 최하위 백성까지의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 유지 제도였으나 신라의 골품제는 주로 관직의 진출이나 지배층의 역활 분담쪽만 한정적으로 적용되었습니다.즉 지배자들을 규율하는 원칙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골품제를 정면으로 반대하고 나온 김춘추의 주장에 - 그렇다고 김춘추가 골품제의 전면 폐지를 애기한 것은 아닙니다.단지 성골이 아닌 진골도 왕이 될 수 있다라는 것만 주장한 것입니다.- 미실은 새로운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시대 즉 신세대의 시대가 오고 있음을 직감했을 것입니다.

하나의 구시대가 지나고 새로운 신시대가 오는 과도기에서 사람들은 수많은 문화적 괴리감을 느끼게 됩니다. 특히 그 구시대를 이끌어 가던 리더들은 더더욱 그런 괴리감을 많이 느끼게 됩니다.
자신들이 그동안 누렸던 기득권이 일순간 무너지는 상황이 오게되고 그 동안 진리라고 믿었던 모든 가치관들이 모두 쓰레기처럼 변해 버리는 상황에서 당혹해 하며 어쩔 줄을 모르게 되지요.

"내가 믿는 이 낡은 가치관을 붙잡고 있을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시대에 맞춰 변화할 것인가?"

지난 이야기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재임시절에도 이런 세대차이의 현상이 있었습니다.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과 심지어 민주당까지 합세하여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소추했을 때 똑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마치 20세기의 마지막이 21세기 시작의 발목을 잡는 듯한 느낌...
그들에게는 국민들과 소통하는 탈 권위주의의 대통령이 문화적 충격이었을 것입니다.그래서 어떻게든 이전의 가치관을 유지하려고 발버둥치고 싶었을 것입니다.하지만 이미 시대적 변화를 알고 이를 원하던 국민들의 심판은 냉혹했습니다.국민들은 그런 생각을 국회의원 선거에서 보여주었습니다.

역사는 승자만을 기록한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결국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이끌거나 그 시대에 맞게 변화한 사람들이 승자가 되는 것이고 역사의 기록에 남게 되는 것입니다.
어쩌면 미실은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에 역사속에서 사라졌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Posted on 2009.10.12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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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저녁 TV를 보면서 정말 오랜만에 눈가에 촉촉히 눈물이 맺혔습니다.
바로 일요일 저녁 KBS에서 방송하는 < KBS스페셜 - 어떤 인연 > 편이었습니다.
KBS스페셜은 세상을 보는 창을 제시한다는 취지로 1994년 부터 제작 방송되는 다큐멘터리로 대한민국 다큐멘터리의 대표 브랜드로서의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간판 프로그램 입니다.


이번 주에 방영된 내용은 현재 미국에 정착해 살고 있는 베트남 보트피플과 이들을 구해준 당시 참치원양어선의 선장이었던 한 한국인에 관한 이야기 였습니다.19년만에 생명의 은인을 만난 베트남 난민 출신의 피터누엔씨는 전제용 선장이 찾아간 미국의 LA 공항에서 좀 과하다 싶을 정도의 감정을 표출했습니다.세월이 많이 흘렀음에도 전 선장을 단번에 알아보고 달려 들어 포옹을 하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전 선장도 자제하는 표정이 보였으나 눈가의 눈물은 숨길 수 없었습니다.
물론 생명의 은인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은 아무리 해도 지나침이 없겠지만 순간 저는 조금 과장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프로그램을 계속 보면서 그들이 그렇게 북받치는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던 사정을 알게 되었습니다.

보트피플을 아십니까 ?

베트남 전쟁이 한창 주이던 1970년대 중반.
월맹군의 공세가 치열해지자 위에,다낭 등의 도시로부터 많은 난민들이 베트남을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베트남 전쟁
공산주의와 민족주의를 내세운 북베트남이 독립의 쟁취를 위해 프랑스와 치룬 제1차 전쟁, 미국의 비호를 받는 남베트남과 치른 제2차 전쟁으로 구분되며 제2차 전쟁부터 라오스와 캄보디아까지 전장이 되어 인도차이나 전쟁이라고도 불린다.


특히 사이공 함락과 함께 월남의 군인이나 월남 정권의 협력자와 그 가족들이 난민으로서 미국으로 건너갔으며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 성립 후에도 난민의 해외유출이 계속되었는데, 이들이 보트나 어선으로 탈출하는 경우도 있어 ‘보트피플’이라는 이름이 생겼습니다.
그 후 1979년 베트남-캄보디아전쟁, 중월전쟁의 영향과 베트남의 국내사정으로 난민 수는 더욱 늘어나, 인도적 문제로서 국제적인 주목을 받게 되었으며, 인접국으로부터의 강제송환이나 상륙거부로 인한 참상이 전하여지자 ‘바다의 아우슈비츠’라는 말까지 등장할 정도 였습니다.
처음에는 난민들에게 호의적이었던 주변국 들도 점차로 이들을 귀찮아 하게 되었으며 바다위에서 목숨을 잃는 난민들도 점차 늘어났습니다.



사람을 구하는 것이 죄가 되는 세상

이런 와중에 1985년 11월14일 참치잡이 원양어선 광명87호의 선장이었던 전제용 선장은 말라카 해협에서 표류중이던 베트남 난민 일명 보트피플을 만나게 됩니다.추운겨울 망망대해 한 가운데에서 만난 이들 난민을 전 선장과 승무원들은 자신들의 배로 구해 주고 먹을 것과 의류등을 제공하며 정성것 보살펴 줍니다.하지만 여기에는 정말로 창피해서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의 뒷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나중에 자신을 애타게 찾다가 드디어 연락이 된 당시의 난민 피터누엔씨에게 전 선장이 보낸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동안 담아왔던 부끄러운 이야기를 해야 겠다.당시 여러분들을 구조하고 나서 본사(한국의 원양업회사)에 무전으로 이 사실을 알렸으나 본사에서는 가급적 여러분들을 인근의 무인도에 내려 주고 부산에는 입항시키지 말라는 회신이 왔었다.그래서 임시로 뗏목을 만들기 시작했지만 나는 곧 이렇게 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했고 회사에 다시 전문을 보내 부산까지 데리고 가겠다고 통지했다."

당시는 전두환 군사독재 시절이었으며 우리나라는 이전에 베트남 전쟁에도 참여했기 때문에 베트남 난민들에 대한 우리의 감정은 남다를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의 우리는 베트남 난민들을 외면하려 했으며 차마 인도적 견지에서는 해서는 안될 일 까지 하려 했던 것입니다.
회사의 이런 입장에 끝까지 소신을 버리지 않고 이들을 구해 준 전 선장의 용기가 없었더라면 그 난민들의 생명도 버려졌을 것이며 우리나라에 대한 인식도 난민들을 바다에 방치해서 죽게 하는 그런 나라로 인식 되었을 것입니다.비록 베트남 난민은 아니지만 그 당시의 전 선장의 이런 행동이 너무나도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용기있는 이런 행동에 대한 보상은 너무나도 어처구니 없는 것이었습니다.
부산항에 난민들을 수송하여 입항하고 나서 선장을 비롯한 승무원들은 모두 공안당국의 조사를 받았으며 회사에서는 모두 해고를 당했습니다.더더구나 다른 회사에 까지 취업을 할 수 없도록 이른바 블랙리스트에 이들을 올려 그 들의 앞길을 가로 막았습니다. 당시 배에 있었던 몇몇 승무원들의 인터뷰를 통해 그 일로 인해 그 들이 받았을 박해에 대해 가히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목숨을 구해 준 댓가가 이런 것이라니 너무나도 어처구니 없지 않습니까?


은혜를 잊지 못하는 사람들

전 선장에 의해 구조된 96명의 베트남 난민들은 부산의 임시 수용소를 거쳐 제3국으로 망명을 하였습니다.이 중 당시에도 난민의 대표역활을 하던 피터누엔씨는 미국으로 건너가 간호사로서 자리를 잡았으며 현재는 개인 사업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피터누엔씨는 미국으로 건너가자 마자 자신들을 구해준 전 선장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전 선장을 보지 못하고 (전 선장은 이때 회사에서 해고 당하고 이것저것 다른 일들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고 합니다)
                                                                                             <당시 구조되었던 사람들>
미국으로 건너오게 된 그 는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정리한 파일과 전 선장으로부터 받은 사진을 주변에 보여 주며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없을 까 알아 보았다고 합니다.
또한 매년 자신들이 구조된 날에 자신의 집에 모여 전 선장에 대한 감사 기도를 올렸다고 합니다.
그에 이런 노력의 결과로 지인을 통해 한국의 전 선장에 대한 연락처를 알게 되었고 마침내 2004년 미국에서 이들은 19년만에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들의 만남은 당시 미국에 있던 한인사회와 베트남인사회에 커다란 감흥을 주게 되었으며 현재 까지도 이 만남을 계기로 지속적으로 양 국가의 교민들이 유대를 키워가고 있다고 합니다.


지난 4월 우리나라에서는 국가인권포럼 올해의 인권상을 전제용 선장에게 수여했습니다.

국가인권포럼은 <전제용 선생의 업적은 한국의 위상을 제고시켰을 뿐 아니라 인권 증진에 커다란 획을 그은 사건이라며 전 선생이 유엔난센난민상을 수상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응원해야 한다>
고 말했습니다. 또한 미국의 베트남인 사회에서는 전제용 선장을 UN 난센 난민상 후보로 적극 추천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난센상은 국제적으로 난민들의 지위 보장과 구조를 위해 공이 있는 사람에게 수여되는 상인데 직접 구조 받은 난민들이 자신들을 구조한 사람을 이 상에 추천하는 운동을 벌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인간이라는 것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 보았습니다.
무엇이 옳은 삶인 지,인류애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하지만 복잡한 생각 대신 자신에게 닥칠 불이익을 견디며 수십명의 목숨을 구한 전제용 선장과 고마음을 잊지 못해 또 다른 봉사로 이 빚을 갚고자 하는 피터누엔씨의 LA 공항의 19년만의 재회 모습을 보면서 일요일 오후 기분 좋은 눈물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Posted on 2009.06.05 15:04
Filed Under TV 이야기


지난 4월 YB (윤도현 밴드)가 2년만에 신작 앨범 "공존"을 발표하며 가요계에 다시 복귀했다.
그러면서 타이틀 곡 "아직도 널" 뮤직비디오에 대해 각 방송사에 심의를 신청했었다. 여기에서 KBS 심의팀은 이 뮤직비디오를 방송불가 판정했던 것이 뒤늦게 알려져 화제가 되고 있다.

                                                  < YB밴드의 "아직도 널" 뮤직비디오의 마지막 장면 >

KBS심의팀의 당시 방송불가 판정 사유는 내용 중에 등장인물이 노란선(차도 중앙선)을 심하게 왔다갔다 해서 시청자 특히 청소년에 위험을 줄 수 있다는 점. "청소년들에게 교통법규 위반을 조장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교통법규 위반 조장 이라....코메디도 이런 코메디가 없다.
청소년들이 이걸 보고 서울 도로 한복판에서 노란 중앙선을 왔다갔다하면서 따라 할 위험이 있다는 말인가?
정말로 KBS심의팀은 그것이 걱정되서 불가 판정을 했단 말인가? 아니면 각박한 세태에 국민들에게 한줄기 웃음을 주기 위해 그런 코메디를 한 것일까? 이정도의 내공이라면 개그콘서트에 진출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 일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우리나라 TV의 드라마나 오락 프로그램의 법규위반 장면은 모조리 방송불가를 해야 되는 것 아닌가?
KBS 심의팀의 이번 방송불가 판정은 그 동안 발생해왔던 일련의 사건들을 유추해 생각해 보면 오해를 살 소지가 다분하다.
'이병순 KBS 사장 취임 이후 윤도현씨가 진행하던 프로그램(<윤도현의 러브레터>)에서 하차됐고, 지난 4월 <1대100> <비타민> 등에서 방송출연을 앞두고 취소통보를 하는 등 윤씨를 배제하려는 기류의 연장선에서 이뤄진 것  아니냐 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같은 뮤직비디오를 두고 다른 방송사에서는 문제삼지 않는 데 유독 KBS만이 그 장면을 문제삼아 방송불가 판정을 했다는 점도 석연치 않은 점이다.
소설가 이외수님은 이런 방송불가 판단에 대해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어처구니 없는 방송불가 사유>란 글을 통해 "평범하게 기타를 들고 노래를 불렀으면 어떤 이유로 방송불가 판정을 내렸을까" 하고 반문한 뒤 "노래가 끝난 다음 기타로 사람 머리를 가격하거나 기타 줄로 사람 목을 조를 가능성이 있다고 방송불가 판정을 내리지 않았을까" 라는 말로 KBS의 엽기적 태도를 맹비난했다.
사전 심의를 거쳐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 내용을 방송에서 여과해서 보여준다는 취지에는 충분히 공감을 한다.
하지만 그러한 결정이 국민 대다수의 인정과 동의를 얻어야 비로소 납득할 만한 결정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대한민국은 표현의 자유라는 말이 죽어가고 있다.
지금의 세태는,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누군가의 입맛에 맞는 것만 가능하고 나머지 것들은 어떠한 이유를 대서라도 못하게 하고 있다. 마치 서울광장을 경찰버스로 막는 것처럼 사람들의 입을 막고 귀를 막고 눈을 막고 마침내는 생각할 자유 마저 막아 버리게 될지도 모르는 무서운 상황인것이다.

우리는 소통을 하지 않는 현 정권에 실망하고 분노했다.대로 한복판에 장벽을 치는 모습에 안타까워 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명박산성과 서울광장의 전경버스 벽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러한 자유에 대한 억압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발전을 거꾸로 되돌리는 독약이 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PS.KBS 심의팀은 YB밴드 기획사에서 문제된 장면을 삭제하고 1주일 뒤 다시 재심의를 요청하여 방송 통과 판정을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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