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8.06.09 15:27
Filed Under 역사 이야기

2008년 6월 9일 (월)
▲국내외 주요사건
1815년 = 유럽 200여개 국가.도시 대표들, 나폴레옹 전쟁 사후 처리위한 빈강화협약 체결
1885년 = 프랑스와 청나라, 톈진(天津) 강화조약 체결
1898년 = 영국, 청나라로부터 주룽(九龍)반도 조차
1904년 = 한일양국인민어채구역조례(韓日兩國人民漁採區域條例)) 고시
1909년 = 의병장 하상태, 장단(長湍)에서 일병의 습격을 받고 자결
1920년 = 원산부청(元山府廳) 직원들, 평민회 조직
1926년 = 한용운, 송세호, 6.10만세운동 계획 혐의로 선학원에서 검거
1929년 = 카네기재단 후원으로 미국 신문기자 일행 12명 내한
1953년 = 남한 각의, 남북휴전협정 거부 결의
1954년 = 한국일보 창간. 일본, 방위청 설치법 및 자위대법 공포. 제 3대 민의 원 선거
1959년 = 세계 최초의 원자력 잠수함인 미국의 '조지 워싱턴호' 진수
1967년 = 가말 아브델 나세르 이집트 대통령, 6일전쟁 참패 책임지고 사임
1976년 = 남한 적십자사, 북한 적십자에 추석성묘단 교류 제의
1981년 = 미국 하버드대에 한국학연구소 설립
1983년 = 김영삼 전신민당 총재, 민주화요구 단식 23일만에 중단
1987년 = 연세대생 이한열군, 교내시위도중 경찰 최루탄에 맞아 의식불명(7월 5일 사망)
1991년 = 필리핀 피나투보 화산 폭발 주민 754명 사망. 후세인 요르단 대통령, 정당결성 금지 33년만에 다당제 민주주의 도입 승인
2000년 = 롯데호텔 노조 파업
2001년 = 모하마드 하타미, 이란 대통령에 재선
2002년 = 임신부등 탈북자 3명, 베이징 한국영사관 진입 망명 요청        <출처 : 대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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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기자 정태원씨 촬영)

1987년 6월 9일 교문앞에서 시위 중이던 학 대학생이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부상을 입고 끝내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사건의 당사자인 이한열군은 전라남도 화순 출생으로 광주진흥고등학교를 나와 연세대 경영학과 2학년에 재학중이었다. 이한열군은 경찰이 쏜 최루탄에 머리를 맞고 세브란스 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았으나 1987년 7월 5일 뇌손상으로 사망하였다.

불안한 정국

전두환 대통령의 5공화국 집권 마지막해인 1987년은 연초부터 정국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후계자로 지목된 민정당의 노태후 후보를 내세워 간접선거(일명 체육관 선거)를 통해 집권연장을 하려던 당시 군부세력에 국민들은 온몸으로 거세게 저항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2월에 발생한 서울대생 박종철군에 대한 고문 치사 은폐사건은 마침내 국민들의 저항에 기름을 붓는 형국이 되었다. 하지만 전두환 대통령은 4.13 호헌조치를 통해 직선제 개헌을 하지 않고 당시의 간선제로 대통령을 선출할 것을 천명했으며 이에 항의하는 시민들이 마침내 거리로 나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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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0일 서울 시청앞에 모인 시위 군중들


처음에는 대학생들만의 거리시위로 시작되었던 것이 박종철씨 고문치사 은폐사건을 거치며 재야단체와 여러 시민단체들이 연합해 1987년 6월 10일 [박종철씨 고문치사 은폐사건 규탄대회]를 열기로 하면서 전국민적인 저항으로 이어졌다. 이한열씨는 그 당시 내일로 예정되어 있던 규탄대회에 참가하기 위한 연세대 출정식에 참가 하였다가 교문진출을 시도하여 전경들과 대치하던 중 변을 당한 것이다. 이일을 계기로 우리가 지금 [6.10항쟁] 이라고 부르는 민주화 투쟁을 거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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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항쟁

1987년 6월 10일에는 국민들은 거리에 모여 전두환 정권을 비판하고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는 반면 전두환대통령은 육사 11기 동기인 노태후씨를 대통령 후보로 지목하는 민정당 제4차 전당대회를 열고 있었다.서울시청 , 서울역,명동등에 모인 시민들은 "호헌철폐" , "독재타도"를 외치며 진압하는 전경들과 맞서고 있었다. 당시에는 학생들 뿐만이 아닌 연도에 있던 시민들 , 건물안에 있던 회사원들 까지 창문을 열고 같이 구호를 외쳤으며 거리행진하는 시위대에게 박수를 보냈다. 이렇게 진행된 6.10 항쟁은 6월 29일 노태후 당시 민정당 대통령 후보의 시국수습책인 [6.29 선언]을 이끌어 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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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9일 시국특별선언을 하는 당시 노태우 민정당 대통령 후보



역사는 퇴풀이 되는가?

2008년 대한민국 여름은 또다시 뜨겁게 시작하고 있다.
많은 시민들이 "쇠고기수입반대"와 "전면재협상"을 외치며 6월의 서울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20여년전의 그 때와는 시위 분위기와 양상도 사뭇 다르다. 돌과 화염병, 그리고 최루탄이 없어진 시위장.
하지만 나라를 걱정하고 국민들의 삶을 걱정해서 거리로 나와 자신의 주장을 외치는 사람들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촛불집회 , 문화제 , 공연등의 그 표현 방법이 달라 졌을 뿐 민주주의를 위해 외치는 모습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헤겔은 변증법에서 역사는 나사선 모양으로 발전하며 되풀이 된다고 했다. 똑같은 위치이지만 예전보다는 한단계 업그레이드 된 위치에서의 반복이다. 국민들의 시위문화는 나선형으로 발전했는데 정부의 국민들 목소리에 귀 기울지 않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듯 해서 그것이 답답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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