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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on 2008.05.26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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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진구에 고구려역사문화관이 들어설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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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산 인근의 고구려 유적>

광진구는 광장동 384-8 번지 일대의  3만7천 제곱미터에 달하는 공간에 고구려역사문화관을 착공하여 2011년까지 완공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문화관은 총사업비 395억원이 투입되 지상 2층, 지하1층의 역사문화관을 건립하고 주변에 고구려관련 유적을 정비하며 홍련봉 보루 , 온달장군 묘 등을 재현하는 시설을 갖출 예정이다.

왜 아차산 일까 ?

광진구는 남한에서 가장 많은 고구려역사 문화재인 보루와 산성, 각종유물이 출토된 곳이다.
1977년 구의동 아차산의 보루가 고구려 유적임이 밝혀지면서 이 일대에 산재해 있는 고구려 유적에 대한 조사가 광범위하게 진행 되었다.



아차산 고구려 유적지 발굴연혁 
  1977년 구의동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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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으로 복원한 고구려 보루의 모습>


  1997-1998년 아차산 4보루
  1999-2000년 시루봉보루
  2004년 홍련봉 1보루
  2005년 홍련봉 2보루(제2차 발굴허가 신청 서울시→문화재청)
  2006년 용마산 2보루(완 료)
     
아차산 유적지 출토 유물 현황

토기류 - 24개 기종
- 1,611개체 - 저장용, 조리용, 배식용, 운반용 등의 실용기
- 부장용, 의례용 등의 비 실용기
- 5세기 중엽에서 6세기 중엽 사용
- 당시 사회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
철기류 1,688개체
 - 무기류, 마구류, 농공구 및 용기류
- 백제의 한성이 함락되고 다시 나제연합군에 의해 한강유역이 회복되던 475년과 551년 사이에 속함
- 고구려 고고학 연구에 중요한 편년자료 
기와류 소량  - 홍련봉 1보루에서만 출토
- 위계가 높았음을 증명
벽 돌 소량 - 홍련봉 1보루에서만 출토
- 위계가 높았음을
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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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광진구에서는 남한지역 최초로 고구려의 연화문 와당 및 토기, 철기 등이 출토되어 아차산 보루성에 고구려시대 지휘부가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또한 다수의 온돌 및 기단, 저수시설, 성곽 등 중요한 문화유적이 출토 되었다.
 
서기 475년의 아차산

서기 475년 장수왕이 이끄는 3만의 고구려군은 7일간의 공격 끝에 풍납토성을 함락하고, 백제의 개로왕을 사로잡아 아차산성 아래에서 죽인다. 장수왕은 남녀 포로 8천 명을 잡아 돌아가고 고구려 부대 중 일부는 몽촌토성에 주둔하면서 아차산 일원의 보루를 구축하고 지속적인 한강유역의 점거 및 남진을 시도한다. 그 후 웅진으로 천도한 백제가 다시 전열을 정비하여 한강 유역으로 북상하자, 500년 무렵에 고구려군은 몽촌토성을 버리고 한강을 경계로 아차산 일원에 보루에서 대치한다. 한강을 경계로 대치하던 고구려군은 551년 나제 연합군의 공격으로 한강 유역을 포기하고 임진강 방면으로 이동하게 되고 아차산 일대의 보루군은 폐기된다. 

고구려역사문화관의 의의

최근 가시화되고있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의한 고구려 역사 왜곡에 대응 하며 삼국시대의 최대전력 요충지이며 격전지인 한강유역이 속해 있는 수도 서울에 고구려 역사유적의 체계적인 보관 및 전시를 하여 고구려가 진정 우리의 역사임을 세계에 알리는 역활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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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붉은방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