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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on 2008.06.13 14:30
Filed Under 역사 이야기

2008년 6월 13일 (금)

1917년 =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현 연세대 의대) 개교
1918년 = 광화문 전차 운행 개시
1938년 = 일제, 학교근로보국대 계획 발표하고 경세정제대 강당에서 육군지원병훈련소 입소식 개최
1955년 = 북한과 일본, 어업협정 조인
1956년 = 영국군, 74년만에 수에즈 운하에서 완전 철수
1958년 = 일본, 약탈해간 한국문화재중 반환할 문화재 목록 정부에 전달.
1961년 = 국제연합 한국통일부흥위원회(UNCURK), 5.16 군사쿠데타로 마비된 한국 의회제도 부활 촉구
1967년 = 서울에서 부정선거 규탄하는 대규모 학생시위 발생, 11개 대학 임시휴교
1971년 = 뉴욕타임스,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에 관한 국방부 비밀문서 폭로, 미국내 반전여론 고조
1973년 = 미국.월맹.월남.베트콩, 파리에서 베트남전 휴전 앞당기기 위한 협정에 서명
1974년 = 제 10회 서독 월드컵 개막. 예멘 공화국 무혈 쿠데타 발생
1982년 = 제 12회 스페인 월드컵 개막
1993년 = 킴 켐벨, 캐나다 사상 첫 여성총리에 임명
1994년 = 콜롬비아.멕시코.베네수엘라, 자유무역협정 체결
1997년 = 미국 연방법원, 95년 오클라호마시티 연방정부 청사 폭파해 168명 사망케한 테러범 티모시 맥베이에게 사형선고
2000년 = 김대중 대통령 평양방문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사상 첫 남북정상회담. 이탈리아, 81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저격한 터키 극우파 회교도 메메트 알리 아그자 사면
2002년 = 경기도 양주군에서 신효순.김미선 두 여중생 미2사단 궤도차량에 치여 사망. 6.13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압승 민주당.자민련 참패. 중국당국, 베이징 주재 한국 영사관 진입한 탈북자들 강제 연행하고 제지하던 한국 외교관 폭행.
2003년 = SK 최태원회장, 부당내부거래 및 분식회계 등을 주도한 혐의로 3년 실형 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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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엘스버그>

"역사는 이라크전쟁을 미국사의 가장 비참한 실수로 기록할 것이다. 양심적인 미국인들이 과거 내가 한 일을 다시 해주기 바란다." 

베트남을 전쟁 도발국가로 몰아 전쟁의 정당성을 강변하고 여론 조작만을 일삼고 조직적인 선전 활동을 하던 미국을 향해 '오랫동안 전쟁 기회를 엿보던 미국이 베트남을 선제공격한 전쟁 원인 제공자'라는 진실을 밝힌, 일명 펜타곤(미 국방부)페이퍼라는 보고서를 알려 미국 사회를 일시에 충격에 빠트렸던 전직 해군 장교 다니엘 엘스버그의 말이다.
엘스버그는 원래 베트남 전쟁을 지지하며 베트남전쟁에 깊숙이 관여하였으나 전쟁 이후 신념을 바꿨고 베트남 전쟁에 관한 보고서를 통째로 뉴욕 타임즈에 넘겨버렸다. 미국 정부는 엘스버그는 동성애자라고 공공연히 비난하며 스파이와 절도 등 12개의 중범죄 혐의로 기소하며 악의적인 공작을 이어가나 여론은 진실을 믿었고 법원은 무죄를 선고한다. 또한 미국 정부와 뉴욕타임즈 간의 국익 VS. 국민의 알권리  라는 재판으로 이어져 미국의 언론의 자유에 커다란 공헌을 한 사건으로 기록 되고 있다.

소위 "팬타곤페이퍼" 사건의 전말

펜타곤페이퍼는 제2차 세계대전 때부터 1968년 5월까지 인도차이나에서의 미국의 역할을 기록한 보고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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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는 1967년 미국의 국방장관 로버트 S. 맥나마라의 책임하에 작성되었다. 매사추세츠공과대학 부설 국제연구소의 수석연구원이었던 다니엘 엘스버그는 정부의 허가를 받지 않고 이 문서들을 〈뉴욕 타임스 The New York Times〉에 제공했다. 총 47권으로 된 펜타곤 페이퍼는 약 3,000쪽에 달하는 설명과 4,000쪽의 부속서류로 구성되어 있으며, 완성하는 데 18개월이 걸렸다. 이 작업에 참여했던 엘스버그는 처음에는 인도차이나에서의 미국의 역할을 열렬히 지지했으나, 이 보고서 작성이 끝나갈 무렵에는 미국의 인도차이나 개입에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인도차이나에서의 미국의 저의를 폭로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낀 엘스버그는 이 보고서 가운데 주요부분을 언론에 누출시켰다.

1971년 6월 13일 〈뉴욕 타임스〉는 연방정부가 '최고 기밀서류'로 취급하고 있던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연재기사를 게재하기 시작했다. 〈뉴욕 타임스〉에 3회분 기사가 실린 후 미국 법무부는 연방 제1심 법원으로부터 국가기밀서류의 공표를 금지시키는 임시명령을 얻어낼 수 있었는데, 이때 법무부는 이 보고서를 계속해서 국민들에게 보도한다면 미국의 안보이익에 '치명적이며 회복할 수 없는 손실'을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뉴욕 타임스〉는 역시 이 보고서를 입수하고 있던 〈워싱턴 포스트 The Washington Post〉지와 연합하여 법원의 금지명령에 대항해 15일 동안 법정투쟁을 벌였고, 이 기간중 연재기사는 중단되었다. 1971년 6월 30일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전억제 명령 사건(prior-restraint case)으로 간주된 이 재판에서 연방대법원은 6 대 3의 판결로 양 신문사에게 문제의 보고서를 다시 게재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했다. 또한 법원은 이 보고서의 공표를 제한하기 위한 연방정부의 주장이 정당화될 수 없다고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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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즈는 당시 이 보고서를  연재하면서 닉슨정부로 부터 수많은 압력과 회유를 받았다. 하지만 진정한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뉴욕타임즈는 닉슨정부에 대항하는 쪽을 선택하였다.
페이퍼는 수년 간에 걸쳐 베트남에 대한 미국의 개입증대를 둘러싸고, 그 법률적·도덕적 정당성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점증하고 있던 시기에 공표되었기 때문에 미국 내에서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논쟁을 야기시켰다. 국가의 최고 기밀서류가 폭로되고 계속 연재되자 1972년 선거에서 재선을 노리고 있던 닉슨 행정부는 당황했다. 펜타곤 페이퍼의 폭로로 곤경에 처해 있던 닉슨은 엘스버그의 평판을 떨어뜨리기 위해 불법적인 수단을 동원했는데, 이러한 사실은 이후 워터게이트 사건의 조사중에 명백히 밝혀졌다
이러한 사건은 진정한 언론의 모습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많은 반성과 영향을 주게 되었다. 물론 현재의 뉴욕타임즈가 9.11 테러이후 정부의 정책에 대체로 순응하는 쪽으로 돌아서기는 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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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붉은방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