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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on 2008.05.20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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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5월 20일 (화)
▲국내외 주요사건
325년 =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 최초의 기독교 종교회의인 제1차 니케아 공의회 소집
1874년 = 미국 의류업자 리바이 스트로스, 구리 리벳이 박힌 청바지 첫 시판
1875년 = 길이.질량.부피 등의 국제적 표준 통일위한 미터법 파리서 조인
1882년 = 이탈리아, 독일-오스트리아 양국 동맹에 가담 3국동맹 결성
1902년 = 쿠바, 미국지배 벗어나 공화국으로 독립
1920년 = 멕시코 초대 대통령 베누스티아노 카란사, 군사반란으로 부하에게 피살
1926년 = 한용운의 시집 '님의 침묵' 출간
1927년 = 미국 비행가 찰스 린드버그, 뉴욕-파리 대서양횡단 논스톱 단독비행에 성공
1949년 = 남로당 국회 프락치 사건으로 김약수(金若水).이문원(李文源) 의원 등 구속. 미국무부, 주한미군 철수계획 발표
1954년 = 제 3대 국회의원(민의원) 선거
1961년 = 장도영(張都暎), 내각수반에 취임
1962년 = 정부, 야간통행금지 부활
1978년 = 일본 나리타(成田) 공항 개항
1980년 = 신현확(申鉉碻) 총리 내각, 대규모 반정부 소요사태에 대한 책임으로 총사퇴. 대법원, 김재규(金載圭) 중앙정보부장 등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관련자 5명 사형 확정
1982년 = 영국군, 포클랜드섬 상륙작전 개시
1986년 = 서울대 이동수군 분신자살
1989년 = 자오쯔양(趙紫陽) 중국 총서기 실각
1990년 = 루마니아, 첫 자유총선거 실시
2002년 = 동티모르, 신생독립국으로 출범
2003년 = 대북비밀송금 의혹 관련 이근영 전 금융감독위원장 긴급체포

"님은 갔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 교과서에 나오는 시들을 무조건 외워야 하는 시기가 있었다. 시험을 위해서...
시속에 숨어있는 뜻도 모른고 서정시,서사시,은유법,비유법,청록파 등등...무수히 외웠던 많은 지식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어이없는 짓이었다. 시를 쓴 사람의 마음도 이해 못하면서 어떻게 시를 감상할 수 있을까.
하지만 무작정 외워던 그 많은 시들 중에도 어린 마음이지만 가슴이 울컥하거나 눈시울이 붉어지는 그런 시들도 있었다. 그런 감정이 하나 둘 생기면서 좋아하는 시인도 생기게 되고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지만 그 들의 시를 일부러 헌책방에서 구입해 읽는 정성을 보이기도 했었다.
윤동주, 한용운 .
내가 학창시절에 가장 좋아했던 시인이다.
굳이 국어방법론적으로 분류하자면 둘다 여성취향적 문체를 가진 시인이다.
하지만 그런 분류 필요없이 난 그들의 시체가 좋았다. 순응과 절제와 조용한 외침들, 그런것들이 좋았다.
5월 20일은 만해 한용운의 [님의침묵] 시집이 발간된지 82주년이 되는 날이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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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침묵 시비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님의 침묵 - 전문 >

시 [님의 침묵]에 대한 설명은 굳이 하고 싶지 않다. 내가 말함으로써 읽는 이에게 선입견이 될 것이고 그것이 이 시를 올바르게 감상하는데 방해가 될 테니까. 시의 배경이 무엇이며, 이시의 님은 누구이며 , 작가의 사상은 무엇이며 이런 것들은 시를 감상하는 데 하등의 도움이 되지 못한다. 시를 분해하지 말고 시를 있는 그대로 한번 감상해 보자.

<만해 한용운 연표>
1879 충남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에서 부 韓應俊의 차남으로 출생, 속명은 貞玉, 법명은 용운, 법호는 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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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 ~1897 향리에서 한학 수학 
1892 천안 전씨와 결혼 
1899 강원도 설악산의 백담사 등지를 전전 
1904 귀향하여 향리에서 수개월간 머물다 
1905 백담사 김연곡 스님에게서 득도. 김영제 스님에 의하여 수계. 이후 이학암 스님으로부터 <기신론>, <능업경>, <원각경> 등을 사사받음 
1908 4월경 일본으로 건너가 下關 등지를 순유하고 동경의 曹洞宗 대학에서 불교와 서양철학을 청강함. 10월경 귀국 
1910 <조선불교유신론> 탈고 (1913년 불교서관에서 간행) 
1912 불교경전 대중화의 일환으로 <불교대전>을 편찬하기 위해 양산 통도사의 고려 대장경을 열람함 
1913 불교강연회 총재에 취임. 박한영 등과 함께 불교 종무원을 창설. 통도사 불교강사에 취임. <불교대전>을 국한문으로 편찬(1914, 홍법원) 
1918 월간 교양지 <惟心>을 발간하여 편집인 겸 발행인이 됨 
1919 1월경 최린, 현상윤 등과 조선독립에 대해 의논함. 최남선이 작성한 <독립선언서>의 자구 수정을 하였으며 <공약 3장>을 추가함. 3월 1일 명월관 지점에서 33인을 대표하여 독립선언 연설을 하고 투옥됨. 7월 10일 <조선독립의 개요> 제출 
1926 시집 <님의 침묵>을 회동서관에서 발행하다 
1927 신간회 중앙집행위원 겸 서울지부장에 피선됨 
1931 김법린, 최범술 등이 조직한 승려비밀결사인 卍黨의 영수로 추대됨 
1933 유숙원과 재혼. 벽산 스님, 방응모, 박광 등의 도움으로 성북동에 尋牛莊을 짓다. 여기에서 소설 <흑풍>, <죽음> 등을 조선일보에 연재하다. 
1944 6월 29일 심우장에서 이적. 미아리에서 화장하여 망우리 공동묘지에 묻히다 

만해 한용운을 이야기 할 때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독립운동가,승려,시인.
그에 독특한 인생경로도 사람들의 많은 호기심을 일으키지만 무었보다도 그는 자신의 소신을 항상 굽히지 않고 이야기 할 수 있었던 , 그 당시로는 정말 몇 안되는 절개를 지닌 사람이었다.
선생의 이러한 정신은 다음과 같은 일화에도 잘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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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홍성의 만해선생 생가


일본이 통치하는 동안 그들은 처음엔 민적(民籍), 그 후엔 호적법(戶籍法)을 실시했다.
선생은 처음부터 "나는 조선 사람이다. 왜놈이 통치하는 호적에 내 이름을 올릴 수 없다."고 하며, 시집 《님의 침묵》에도 '나는 민적이 없어요'라는 구절이 있듯이 평생을 호적 없이 지냈다. 그래서 선생이 받는 곤란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신변 보호를 받을 수 없었던 것은 물론, 모든 배급 제도(쌀 고무신 등)에서도 제외되었다.
그보다도 큰 문제는 선생이 귀여워하던 외딸 영숙이가 학교를 다닐 수 없었던 점이었다. 아버지가 호적이 없으니 자식 또한 호적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선생은 돌아가시는 날까지 "일본놈의 백성이 되기는 죽어도 싫다. 왜놈의 학교에도 절대 보내지 않겠다."하고는 집에서 손수 어린 딸에게 공부를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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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담사 만해 기념관


최근 일본에서는 2012년 부터 사용하는 중학교 교과서에 독도가 일본 영토임을 표기하는 내용을 담겠다고 합니다. 마치무라 노부타카 일본 관방장관은 "다케시마가 일본 영토라는 정부의 일관된 주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얼마전에는 인터넷에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포기했다라는 유언비어가 돌기도 했습니다.
오늘같은 세태에 한용운 선생과 같이 올곧은 분이 있었더라면 우리들 모두에게 힘이 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일본의 관리들이 저렇게 망언을 늘어놓지는 못했을 거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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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붉은방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