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9.11.17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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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이 퇴장을 했습니다.
그동안 숱한 화제를 뿌리며 인기를 누리던 미실. 심지어 드라마 제목이 <선덕여왕>이 아니라 <미실세주) 이었어야 하지 않느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미실 역활이 드라마 <선덕여왕>에 미친 영향은 막강 했습니다.실제로 50회에 방영되었던 미실의 최후장면은 순간 시청률이 49.9%를 기록해 그 동안의 선덕여왕 시청률 중 최고를 기록했습니다.언론에서는 온통 미실에 대한 보도 뿐이고 사람들도 미실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자~ 이런 미실이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퇴장을 했습니다.하지만 드라마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드라마 제목이 <미실세주>가 아닌 <선덕여왕>이기 때문이지요.미실이 드라마에서 퇴장한 여파는 당장 시청률에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선덕여왕>은 17일 시청률조사기관 TNS 미디어코리아 집계 37.7%를 기록하며 전 회 42.3%보다 무려 4.6%나 하락했습니다. 이는 지난 주 미실의 죽음 직전과 죽음 당시의 9일 44.9% 10일 44.4% 이후 뚜렷한 하락세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선덕여왕>과 동시간대 방영된 KBS 2TV 월화드라마 <천하무적 이평강>은 6.2%, SBS <생활의 달인>은 5.8%를 각각 기록하며 미실이 퇴장해 다소 맥빠지기 시작한 <선덕여왕>을 서서히 압박하기 시작했습니다.물론 4~5%의 시청률 하락이 바로 사람들의 관심이 멀어졌다고 의미할 수 는 없습니다.
하지만 미실이 퇴장하면서 가져온, 어찌보면 예견된 하락세인 것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중심기둥이 빠진 <선덕여왕>의 다음 카드는 무었일까요?
<선덕여왕>작가진들은 미실이 퇴장한 이후의 드라마 전개 방향을 이렇게 애기했습니다.

< 덕만공주가 왕이 되기 위해서 미실세력과의 대결을 벌인 것이 드라마 중반부의 핵심이었다면 드라마 후반은 덕만공주가 어떤 왕의 길을 걸어가는지? 그리고 여기에 유신과 비담,춘추가 어떤 역활을 하며 돕게되는지?마지막으로는 유신과 비담,춘추가 어떤 방식으로 자신들만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대립하는 지를 보여주는 것이 드라마 후반부의 핵심이 될 것이다.>

실제로 드라마는 미실의 최후 과정이 지난 51회에서 빠른 극 진행을 보이며 미실이 드라마에서 빠진 아쉬움을 매우기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미실 사후 난을 빠르게 진압하는 모습과 덕만의 사람들인 유신,비담,춘추에게 각자의 임무를 부여하는 장면, 그리고 덕만이 왕에 오르는 장면까지...
사람들에게 미실의 공백에 대한 서운함을 생각하지 못할 정도의 빠른 진행을 보여 주었습니다.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과정에 사람들은 어리둥절 할 수도 있었지만 미실시대와의 단절을 빠른 전개를 통한 세월의 흐름으로 처리하였습니다.
여기에 칠숙의 비장한 최후 장면을 곁들여 사람들의 감정적인 감동을 자극하는 것도 잊지 않았고요.
여기에 52회 예고에서는 나이가 든 유신,비담,덕만(?) 의 모습을 보여주며 비담과 유신이 대립하게 될 것이라는 떡밥도 잊지 않았습니다.
 
52회에서는 상장군으로서 군대를 이끌고 전장에서 연승을 거듭하는 유신(엄태웅)과 여왕 직속 감찰기관으로 사량부를 통솔하는 비담(김남길)의 새로운 대립구조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에 비담의 복야회 문서 조작 등으로 인해 유신의 오른팔 월야(주상욱)까지 사령부에 끌려가 긴장감을 고조시켰지요.
덕만-미실의 대립구도를 대체할 갈등구조를 만들기 위해 비담-유신의 갈등구조를 만들었으며 이 갈등 구조의 상위에는 이를 통제하는 <선덕여왕>의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하지만 비담-유신의 갈등 구조는 이전의 덕만-미실의 갈등구조에 비하면 턱없이 초라해 보이는 구도 입니다.일단 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 원인이 되는 모티브가 너무 모자랍니다. 덕만-미실은 신국을 두고 주인이 되기 위한 싸움을 벌였습니다.그 싸움은 목숨을 포함한 모든 것을 걸고 하는 싸움이었기에 그 토록 절박할 수 밖에 없는 갈등이었습니다.
반면 비담-유신의 갈등구조는 주인이 정해진 이후 그 아래에서 벌어지는 권력다툼으로 비춰져 약간은 긴장감이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제작진은 이 갈등을 그대로 발전시켜 나중에 <비담,염종의 난>으로 이어가려는 의도로 보여지지만 비담이 미실의 아들이라는 태생적 원인으로만은 이 갈등을 유지,증폭시킬 수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그렇다면 이 갈등구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어떤 장치들을 사용하게 될까요?
아마도 유신,비담의 덕만에 대한 충성경쟁과 정인에 대한 연모를 가미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51회 마지막 장면에서 유신은 모든 것을 바치는 충성을 맹세했고 비담은 아낌없이 뺐는 사랑을 맹세했습니다. 이처럼 유신과 비담은 한 대상인 덕만에 대한 애정은 같으나 그 방식은 서로 다를 것이라는 사실을 유신-비담의 갈등구조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으로 사용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드라마 <선덕여왕>의 종반부를 장식할 이야기는 그 제목에서도 보이듯이 바로 <선덕여왕>이야기 이어야 합니다.
우리 역사상 최초의 여왕인 <선덕여왕>이 어떻게 왕이 되었으며 어떤 왕의 길을 걸었으며 그 왕의 길을 걷기 위해 얼마나 많은 개인적 행복을 포기해야 했는 지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역사상 최초의 여왕으로, 그리고 첨성대를 지은 여왕으로 기억되고 있는 <선덕여왕>은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행복한 삶을 살지는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후사를 위해 세명의 남편을 두었으나 결국 후사가 없었고 즉위 직전에는 여왕 즉위에 반대하는 <칠숙,석품의 난>이 있었으며 말년에는 상대등인 비담의 난 와중에 죽게됩니다.
실제로 여왕은 자신의 왕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많은 귀족들의 견제를 이겨야 했으며 이 때문에 많은 것을 또한 포기해야 했을 것입니다.이제 본격적으로 여왕의 시대를 연 드라가 <선덕여왕>은 고난의 길이었던 여왕의 길을 걸었던 선덕여왕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때 입니다.

Posted on 2009.10.13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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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선덕여왕이 덕만공주의 왕위계승 선언을 기점으로 그 동안의 아마츄어적 대결 구도가 드디어 왕위를 두고 벌이는 본격적인 정치 대결로 들어섰습니다. 이제 부터는 작은 사건(에피소드)에 대한 대결이 아닌 정말로 생사를 걸고 결과로 달리는 싸움이 되겠지요.
드라마를 보면서 문득 재미있는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미실이 덕만공주의 여자도 왕이 될 수 있다는 발언과 김춘추의 골품제는 폐지되어야 한다는 말을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생각하고 고민하는 장면 이었지요.그리고 나오는 미실의 한마디....

"새로운 시대가 오는 것인가?"


덕만공주와 김춘추의 말에 미실은 아마도 심각한 문화적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쉽게 애기하자면 세대차이를 절실하게 느낀 것입니다.수십년간 권력의 핵심에 있었으면서도 자신은 단 한번도 해보지 못한 생각들을 거침없이 쏟아 놓는 두 사람을 보면서 미실은 정신적으로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미실을 충격에 빠지게 한 이 두가지는 과연 그 당시 신라, 미실에게 어느정도의 절대적 진리였을까요?

남자만이 왕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장자상속이라는 문화적 배경에서 나온 것입니다.
어찌보면 원시사회의 모계 중심 사회에서 부계중심 사회로 변화하면서 만들어진 문화일 것입니다.
권력의 핵심에 늘 남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여자들의 이야기는 묻혀지고 전해지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역사를 뜻하는 영어 History의 어원이 History = His + Story 역사는 그 남자의 이야기라는 말도 있습니다.미실도 이러한 가치관에 철저히 길들여져 그 많은 능력과 사람들이 있었음에도 감히 왕이 되고자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역사는 늘 발전하는 법.
우리나라 최초의 여왕이 만들어지기 전에 이웃 일본에서 이미 여왕이 왕위에 오른 적이 있습니다.
시대적으로 보아 당시 진평왕이 선덕여왕에게 왕위를 물려 줄 때 이웃나라인 일본에서의 이런 전례를 들어 귀족들의 반대를 물리쳤음 직도 합니다.
일본에서는 593년 당시 외척이었던 소가노 우마코가 당시의 일왕을 암살하고 자신의 딸인 스이코를 일본왕으로 추대합니다.하지만 모든 권력은 쇼토쿠대자가 섭정을 하게되고 스이코 왕은 꼭두각시 노릇만을 하게 됩니다.꼭두각시 왕일 지라도 이웃 일본에 여자가 왕이 되었다는 소식은 당시 교류가 많았던 신라에서도 알게 되었을 것이고 이러한 사실은 새로운 가치관을 만들수 있는 배경이 되었을 것입니다.


미실을 구속한 또하나의 진리 바로 신라의 골품제는 신라시대 혈통의 높고 낮음에 따라 신분을 구분한 제도이며 왕족을 대상으로 한 골제(骨制)와 귀족과 일반백성을 두품제(頭品制)로 구분하였습니다.
하지만
신라의 이런 골품제는 다른 시대의 신분제도와는 약간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고려나 조선에서의 신분제는 왕으로 부터 최하위 백성까지의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 유지 제도였으나 신라의 골품제는 주로 관직의 진출이나 지배층의 역활 분담쪽만 한정적으로 적용되었습니다.즉 지배자들을 규율하는 원칙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골품제를 정면으로 반대하고 나온 김춘추의 주장에 - 그렇다고 김춘추가 골품제의 전면 폐지를 애기한 것은 아닙니다.단지 성골이 아닌 진골도 왕이 될 수 있다라는 것만 주장한 것입니다.- 미실은 새로운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시대 즉 신세대의 시대가 오고 있음을 직감했을 것입니다.

하나의 구시대가 지나고 새로운 신시대가 오는 과도기에서 사람들은 수많은 문화적 괴리감을 느끼게 됩니다. 특히 그 구시대를 이끌어 가던 리더들은 더더욱 그런 괴리감을 많이 느끼게 됩니다.
자신들이 그동안 누렸던 기득권이 일순간 무너지는 상황이 오게되고 그 동안 진리라고 믿었던 모든 가치관들이 모두 쓰레기처럼 변해 버리는 상황에서 당혹해 하며 어쩔 줄을 모르게 되지요.

"내가 믿는 이 낡은 가치관을 붙잡고 있을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시대에 맞춰 변화할 것인가?"

지난 이야기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재임시절에도 이런 세대차이의 현상이 있었습니다.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과 심지어 민주당까지 합세하여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소추했을 때 똑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마치 20세기의 마지막이 21세기 시작의 발목을 잡는 듯한 느낌...
그들에게는 국민들과 소통하는 탈 권위주의의 대통령이 문화적 충격이었을 것입니다.그래서 어떻게든 이전의 가치관을 유지하려고 발버둥치고 싶었을 것입니다.하지만 이미 시대적 변화를 알고 이를 원하던 국민들의 심판은 냉혹했습니다.국민들은 그런 생각을 국회의원 선거에서 보여주었습니다.

역사는 승자만을 기록한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결국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이끌거나 그 시대에 맞게 변화한 사람들이 승자가 되는 것이고 역사의 기록에 남게 되는 것입니다.
어쩌면 미실은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에 역사속에서 사라졌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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