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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on 2009.10.12 11:37
Filed Under TV 이야기

일요일 저녁 TV를 보면서 정말 오랜만에 눈가에 촉촉히 눈물이 맺혔습니다.
바로 일요일 저녁 KBS에서 방송하는 < KBS스페셜 - 어떤 인연 > 편이었습니다.
KBS스페셜은 세상을 보는 창을 제시한다는 취지로 1994년 부터 제작 방송되는 다큐멘터리로 대한민국 다큐멘터리의 대표 브랜드로서의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간판 프로그램 입니다.


이번 주에 방영된 내용은 현재 미국에 정착해 살고 있는 베트남 보트피플과 이들을 구해준 당시 참치원양어선의 선장이었던 한 한국인에 관한 이야기 였습니다.19년만에 생명의 은인을 만난 베트남 난민 출신의 피터누엔씨는 전제용 선장이 찾아간 미국의 LA 공항에서 좀 과하다 싶을 정도의 감정을 표출했습니다.세월이 많이 흘렀음에도 전 선장을 단번에 알아보고 달려 들어 포옹을 하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전 선장도 자제하는 표정이 보였으나 눈가의 눈물은 숨길 수 없었습니다.
물론 생명의 은인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은 아무리 해도 지나침이 없겠지만 순간 저는 조금 과장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프로그램을 계속 보면서 그들이 그렇게 북받치는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던 사정을 알게 되었습니다.

보트피플을 아십니까 ?

베트남 전쟁이 한창 주이던 1970년대 중반.
월맹군의 공세가 치열해지자 위에,다낭 등의 도시로부터 많은 난민들이 베트남을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베트남 전쟁
공산주의와 민족주의를 내세운 북베트남이 독립의 쟁취를 위해 프랑스와 치룬 제1차 전쟁, 미국의 비호를 받는 남베트남과 치른 제2차 전쟁으로 구분되며 제2차 전쟁부터 라오스와 캄보디아까지 전장이 되어 인도차이나 전쟁이라고도 불린다.


특히 사이공 함락과 함께 월남의 군인이나 월남 정권의 협력자와 그 가족들이 난민으로서 미국으로 건너갔으며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 성립 후에도 난민의 해외유출이 계속되었는데, 이들이 보트나 어선으로 탈출하는 경우도 있어 ‘보트피플’이라는 이름이 생겼습니다.
그 후 1979년 베트남-캄보디아전쟁, 중월전쟁의 영향과 베트남의 국내사정으로 난민 수는 더욱 늘어나, 인도적 문제로서 국제적인 주목을 받게 되었으며, 인접국으로부터의 강제송환이나 상륙거부로 인한 참상이 전하여지자 ‘바다의 아우슈비츠’라는 말까지 등장할 정도 였습니다.
처음에는 난민들에게 호의적이었던 주변국 들도 점차로 이들을 귀찮아 하게 되었으며 바다위에서 목숨을 잃는 난민들도 점차 늘어났습니다.



사람을 구하는 것이 죄가 되는 세상

이런 와중에 1985년 11월14일 참치잡이 원양어선 광명87호의 선장이었던 전제용 선장은 말라카 해협에서 표류중이던 베트남 난민 일명 보트피플을 만나게 됩니다.추운겨울 망망대해 한 가운데에서 만난 이들 난민을 전 선장과 승무원들은 자신들의 배로 구해 주고 먹을 것과 의류등을 제공하며 정성것 보살펴 줍니다.하지만 여기에는 정말로 창피해서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의 뒷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나중에 자신을 애타게 찾다가 드디어 연락이 된 당시의 난민 피터누엔씨에게 전 선장이 보낸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동안 담아왔던 부끄러운 이야기를 해야 겠다.당시 여러분들을 구조하고 나서 본사(한국의 원양업회사)에 무전으로 이 사실을 알렸으나 본사에서는 가급적 여러분들을 인근의 무인도에 내려 주고 부산에는 입항시키지 말라는 회신이 왔었다.그래서 임시로 뗏목을 만들기 시작했지만 나는 곧 이렇게 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했고 회사에 다시 전문을 보내 부산까지 데리고 가겠다고 통지했다."

당시는 전두환 군사독재 시절이었으며 우리나라는 이전에 베트남 전쟁에도 참여했기 때문에 베트남 난민들에 대한 우리의 감정은 남다를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의 우리는 베트남 난민들을 외면하려 했으며 차마 인도적 견지에서는 해서는 안될 일 까지 하려 했던 것입니다.
회사의 이런 입장에 끝까지 소신을 버리지 않고 이들을 구해 준 전 선장의 용기가 없었더라면 그 난민들의 생명도 버려졌을 것이며 우리나라에 대한 인식도 난민들을 바다에 방치해서 죽게 하는 그런 나라로 인식 되었을 것입니다.비록 베트남 난민은 아니지만 그 당시의 전 선장의 이런 행동이 너무나도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용기있는 이런 행동에 대한 보상은 너무나도 어처구니 없는 것이었습니다.
부산항에 난민들을 수송하여 입항하고 나서 선장을 비롯한 승무원들은 모두 공안당국의 조사를 받았으며 회사에서는 모두 해고를 당했습니다.더더구나 다른 회사에 까지 취업을 할 수 없도록 이른바 블랙리스트에 이들을 올려 그 들의 앞길을 가로 막았습니다. 당시 배에 있었던 몇몇 승무원들의 인터뷰를 통해 그 일로 인해 그 들이 받았을 박해에 대해 가히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목숨을 구해 준 댓가가 이런 것이라니 너무나도 어처구니 없지 않습니까?


은혜를 잊지 못하는 사람들

전 선장에 의해 구조된 96명의 베트남 난민들은 부산의 임시 수용소를 거쳐 제3국으로 망명을 하였습니다.이 중 당시에도 난민의 대표역활을 하던 피터누엔씨는 미국으로 건너가 간호사로서 자리를 잡았으며 현재는 개인 사업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피터누엔씨는 미국으로 건너가자 마자 자신들을 구해준 전 선장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전 선장을 보지 못하고 (전 선장은 이때 회사에서 해고 당하고 이것저것 다른 일들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고 합니다)
                                                                                             <당시 구조되었던 사람들>
미국으로 건너오게 된 그 는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정리한 파일과 전 선장으로부터 받은 사진을 주변에 보여 주며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없을 까 알아 보았다고 합니다.
또한 매년 자신들이 구조된 날에 자신의 집에 모여 전 선장에 대한 감사 기도를 올렸다고 합니다.
그에 이런 노력의 결과로 지인을 통해 한국의 전 선장에 대한 연락처를 알게 되었고 마침내 2004년 미국에서 이들은 19년만에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들의 만남은 당시 미국에 있던 한인사회와 베트남인사회에 커다란 감흥을 주게 되었으며 현재 까지도 이 만남을 계기로 지속적으로 양 국가의 교민들이 유대를 키워가고 있다고 합니다.


지난 4월 우리나라에서는 국가인권포럼 올해의 인권상을 전제용 선장에게 수여했습니다.

국가인권포럼은 <전제용 선생의 업적은 한국의 위상을 제고시켰을 뿐 아니라 인권 증진에 커다란 획을 그은 사건이라며 전 선생이 유엔난센난민상을 수상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응원해야 한다>
고 말했습니다. 또한 미국의 베트남인 사회에서는 전제용 선장을 UN 난센 난민상 후보로 적극 추천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난센상은 국제적으로 난민들의 지위 보장과 구조를 위해 공이 있는 사람에게 수여되는 상인데 직접 구조 받은 난민들이 자신들을 구조한 사람을 이 상에 추천하는 운동을 벌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인간이라는 것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 보았습니다.
무엇이 옳은 삶인 지,인류애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하지만 복잡한 생각 대신 자신에게 닥칠 불이익을 견디며 수십명의 목숨을 구한 전제용 선장과 고마음을 잊지 못해 또 다른 봉사로 이 빚을 갚고자 하는 피터누엔씨의 LA 공항의 19년만의 재회 모습을 보면서 일요일 오후 기분 좋은 눈물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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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붉은방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