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시상식'에 해당되는 글 1건

Posted on 2008.05.16 09:45
Filed Under 역사 이야기

<2008년 5월16일>

1804년 = 프랑스 상원, 나폴레옹 황제로 옹립
1871년 = 미국 함대, 강화도 해안으로 침입해 신미양요(辛未洋擾) 발발
 
1920년 = 제 1회 전조선체육대회 개최
1929년 = 미국 할리우드 루스벨트 호텔에서 제 1회 아카데미상 시상식
 
1951년 = 국회,제 2대 부통령에 김성수(金性洙) 선출
1961년 = 박정희 소장이 주도한 군사 쿠데타 발생, 장면 내각 붕괴
 
1965년 = 박정희 대통령, 첫 미국 방문
 
1966년 = 중국 문화대혁명 시작
1970년 = 서울대교(현 마포대교) 개통
 
1977년 = 가계수표제도, 서울지역서 첫 실시
 
1989년 = 정명훈(鄭明勳)씨, 프랑스 국립 바스티유 오페라단 음악총감독겸 상임
 
지휘자에 취임. 카를로스 메넴, 아르헨티나 대통령에 당선
 
1991년 = 프랑스 첫 여성총리 에디트 크레송 취임.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 영국 군주로는 최초로 미국 의회에서 연설
 
1995년 = 일본경찰, 도쿄 지하철에서 사린가스 테러 자행한 옴진리교 교주 아사하라 쇼코 체포
 
1999년 = 모하마드 하타미 이란 대통령, 회교혁명후 이란 지도자로는 최초로 사우디아라비아 방문
 
2001년 = 경기도 광주시 기숙입시학원 화재로 30여 명 사상
 
2002년 = 분당 파크뷰아파트 특혜분양 관련 에이치원개발 홍원표 사장 구속
 
2003년 = 이라크 긴급 의료지원단 출발


제1회 아카데미 시상식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전세계 영화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은 그 수상을 상상해 보는 아카데미상(오스카상)은 어떻게 시작 되었을까?
제1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은 1929년 5월 16일 헐리웃의 루즈벨트 호텔에서 270여 명의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되었다. 당시의 아카데미상은 고작 20여 명의 멤버로 구성된 위원회가 12개 부문의 수상작을 선출하는 보잘것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3년 후인 1932년에는 100명의 위원들이 선출에 임하는 대규모 시상식으로 성장하였다. 처음 15년간은 호텔에서 거행되다가 1944년부터 극장 상영에 이익이 되도록 시상식을 극장에서 거행하였고, 1969년부터는 LA 카운티 뮤직 센터 '도로시 챈들러 파빌론'에서 거행되었다. 이후 1988년부터는 슈라인 오디토리움(Shrine Civic Auditorium)과 번갈아가며 진행되다가 2002년에 헐리우드에 코닥 극장(Kodak Theatre)이 아카데미 전용 시상식장으로 사용되었다. 한편 1953년부터 NBC-TV에서 최초로 방송 전파를 탔다.

왜 오스카상이라고 부를까?

오스카는 아카데미상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 용어로 원래는 황금상의 닉네임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황금상은 아카데미 시상식 개최를 결정하게 된 회의에 참석했던 미술가 세드릭 깁슨이 그린 그림에서 비롯됐다.
그것은 골격이 우람한 남자가 십자군의 칼을 쥐고 필름릴 위에 서 있는 모습이었고, 이를 조각가 조지 스탠리가 점토를 이용해 최초로 트로피로 만들었다.그 뒤 알렉스 스미스에 의해 주석 2.5%, 동 7.5%에 금도금이 된 높이 34cm, 무게 3.1kg의 황금상인 오스카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아카데미 트로피가 '오스카(Oscar)'라는 별명을 얻은 데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두 차례나 아카데미상을 탄 여배우 베티 데이비스가 트로피를 뒤에서 보았을때 첫 남편 해먼 오스카 넬슨과 꼭 닮아서 '오스카'라고 명명했다는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헐리웃의 명 컬럼니스트인 시드니 스콜스키가 컬럼을 쓰다가 아카데미상을 늘 '그 상'이라고 표현하는데 싫증을 느껴 '오스카'라고 새로이 고안해 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가장 유력한 설은 아카데미 사서 출신에서 감독으로 변신했던 마거릿 헤릭 여사가 트로피를 보고 “우리 오스카 아저씨를 닮았네요”라고 말한 것을 한 신문의 기자가 듣고 다음날 컬럼에서 아카데미상의 이름을 '오스카'라고 부른다고 쓴 것에서 유래한다는 것이다.
이 3가지 설은 60년 전부터 퍼지기 시작해 현재에 이르고 있는데 어떤 것이 정확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제 '오스카'란 이름은 '아카데미'시상식과 같은 말이 되었버렸다.

아카데미상에 얽힌 뒷 이야기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오스카상을 수상하는 건 영화인들에게 있어 영광이 아닐 수 없다.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시상식 참가를 거부한 사람이 있다.1971년 제43회 때 '패튼장군'으로 남우주연상에 선정된 조지 스콧은 "집에서 하키경기나 보겠다"며 참석을 거부했다.
말론 브란도 역시 1973년 '대부'로 남우주연상의 영예를 안았으나, 미국 인디언에 대한 부당한 처사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수상을 거부하고 시상식에도 불참했다.
1974년엔 로버트 오팔이라는 한 남자가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모습으로 시상식 무대를 가로질러 가는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했으며 1981년엔 당시 레이건 대통령의 저격미수사건으로 시상식이 하루 늦춰지기도 했다.
뭐니뭐니 해도 아카데미 역사에서 가장 이슈가 됐던 건 트로피 도난사건.
지난 2000년 시상식을 불과 1주일여 앞두고 시상자에게 수여할 오스카 트로피가 없어졌다.
주최측은 황급히 트로피를 다시 만드는 소동까지 벌였는데 시상식 직전 LA 한인타운에 위치한 음식점 쓰레기 더미에서 발견됐다

아카데미상에 관련된 기록들

역대 수상자 가운데 실제로 오스카란 이름이 있다. 1941년과 1945년에 걸쳐 두번이나 오스카상을 수상한 뮤지컬 작곡자 오스카 햄머스타인 2세였다. 이밖에 오스카 호몰카(남우조연), 오스카 페르너(남우주연) 등이 있다.
아카데미에서 후보로 선정되기 위해서는 대중성과 함께 예술성, 독창성이 인정돼야 한다. 리메이크작이나 속편들이 거의 수상하지 못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리메이크로 작품상을 수상한 유일한 영화는 1959년도 수상작 '벤허'였다. 이 영화는 1925년에 만들어진 무성영화 '벤허'를 리메이크한 것이다. 이 작품은 지구를 한 바퀴 돌 정도의 필름을 소모했고, 전차 경주장면을 위해 무려 1만5000명이 4개월간이나 동원됐다는 전설 같은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벤허'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남우주연, 남우조연, 감독, 각색, 촬영, 미술, 음향, 작곡, 편집, 의상, 특수효과 등 12개 부문 후보에 올라 각색상을 제외한 11개 부문을 수상했다.
이는 1998년 제70회 아카데미에서 14개 부문 후보에 올라 11개 부문의 황금상을 석권한 '타이타닉'과 역대 타이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기록이다.
1편과 속편이 모두 수상한 영화도 있다. '대부'와 '대부2'는 잇따라 작품상을 수상했다.
아카데미에 여러차례 후보에 올랐지만 상복이 없는 스타들도 있다.
1953년부터 1978년까지 모두 7차례 후보에 올랐던 리차드 버튼과 1963년부터 1983년까지 역시 7차례 후보에 올랐던 피터 오툴은 단 한번도 수상의 영광을 누리지 못했다. 폴 뉴먼 역시 7전8기 끝에 '컬러 오브 머니'에서 한번 수상했을 뿐이다.
1940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13개 부문의 후보에 올라 9개의 트로피를 가져갔지만, 정작 주인공인 클라크 케이블은 남우주연상을 '굿바이 미스터 칩스'의 로버트 도네에게 양보해야 했다.
오스카상 최고령 수상자는 1989년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로 여우주연상을 따낸 제시카 탠디로 당시 80세. 최연소 수상자는 1973년 '페이퍼 문'으로 10살때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테이텀 오닐이다.






 

About

by 붉은방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