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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on 2008.07.24 14:15
Filed Under 역사 이야기

종영을 1회 남기고 있는 SBS 드라마 일지매는 스토리가 이제 대미의 결말로 치닫고 있다.
19회 마지막 장면에서는 일지매인 겸이의 아버지를 죽인 원수인 인조와 일지매가 얼굴을 마주하는 장면으로 엔딩 되면서 마지막회의 내용을 더욱더 궁금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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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의 역활에 김창완이 캐스팅 되었을 때 더군다나 그 역활이 악역이란 것이 알려지면서 사람들은 그 동안 선한 이미지만을 보여주던 (물론 MBC 하얀거탑의 시니컬한 악역도 있었지만) 김창완이 과연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 궁금해 하면서 한편 걱정을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김창완은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악역인 인조의 역활을 너무나도 잘 소화해 내었다. 만사가 귀찮은 듯한 눈 빛 , 주위사람들을 벌벌 떨게 만드는 잔인함 , 그러면서도 정작 본인은 아무일도 아니라는 듯한 말투로 극 중 악역을 훌륭하게 소화해 냈다는 게 사람들의 평이다.

극중에서 김창환이 연기한 , 일지매 겸이의 친아버지인 이원호의 형으로 인조반정을 통해 임금이 된 인조는 어떤 임금이었을까?

왕이 되기 까지

인조는 선조의 손자이다. 어렸을 때 능양군에 봉해졌고 선조의 뒤를 이어 임금이 된 광해군 때인  1623년 서인들의 지지를 얻어 반정으로 임금이 되었다. 반정당시 임금이었던 광해군은 임진왜란 당시 아버지 선조를 대신하여 여러 공을 세웠으나 전쟁이 끝나자 선조가 영창대군을 세자로 다시 책봉하려 하였다. 하지만 선조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자 북학파의 도움을 받아 왕위에 올랐다. 광해군은 왕위에 오른 뒤 당시 기울어 가던 명왕조와 새롭게 부상하는 후금왕조 사이에서 중립외교를 펼쳐 실리를 얻고자 하였으나 이것이 서인들에게 빌미를 주어 결국 반정이 일어나게 되었으며 인조가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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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반정으로 임금이 된 사람은 2명이 있었다. 연산군을 몰아내고 임금이 된 중종과 광해군을 폐위하고 임금이 된 인조. 하지만 이 두반정은 성격이 너무 다르다. 중종반정은 연산군의 폐륜과 실정이 주요 원인 이었다면 인조반정은 다분히 정치적인 쿠테타였기 때문이다.광해군때의 서인들은 명나라를 숭상하여 광해군의 중립외교에 반대했고 이 때문에 결국 광해군을 폐하고 인조를 등극 시킨 것이다.

두번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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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 당시 청나라 병사>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인조의 치세는 그리 순탄하지 만은 않았다. 즉위 1년만에 반정공신 중 하나인 이괄이 난을 일으켜 한성을 버리고 공주까지 피신하였으며 광해군때의 중립외교를 버리고 반금친명 정책을 쓰다 1627년 후금의 침입을 받아 패배하고 형제의 의를 맺게 되는 이것이 정묘호란이다. 정묘호란 이후에도 계속 친명정책을 추진하다 1636년 국호를 청으로 바꾼 청나라 태종이 10만 대군으로 침입하여 마침내 남한산성에 항전하다 항복하여 군신의 의를 맺게 된다. 이 때 청나라 청태종에게 무릎을 꿇고 청나라 왕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번 고개를 숙이는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의 예를 갖추고 항복하게 되는 데 이것이 삼전도의 굴욕이다. 이 삼전도의 항복을 기념하기 위해 청나라의 요구로 세워진 삼전도의 비가 지금도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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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구 석촌동에 있는 삼전도비>



아들을 죽인 임금

병자호란 후 청에 볼모로 잡혀있던 소현세자가 1645년 귀국하고 한달여만에 병을 얻어 급사를 하였다.
이를 두고 청왕조에서 인조를 폐하고 소현세자를 조선의 왕에 봉하려 한다고 의심한 인조가 아들 소현세자를 독살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인조실록에는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세자는 환국한지 얼마 안되 병을 얻었고  병을 얻은지 며칠 안되 사망하였다. 시체는 온몸이 새까맣고 뱃속에는 피가 쏟아져 나왔다.검은천으로 죽은 세자의 얼굴 반을 덮었는데 옆에서 모시던 사람들도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다.낯빛은 중독된 사람과 같았는데 외부의 어느 누구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실록의 내용만으로도 독살을 의심하기에 충분하다.
소현세자의 죽음 뒤의 정황은 더욱더 인조를 의심하게 만든다. 인조는 소현세자의 부인인 강빈을 소현세자가 죽은 뒤 1년 후에 사사 시켰으며 소현세자의 뒤를 이어 응당 세자로 책봉되어야 할 소현세자의 자식 대신에 봉림대군을 세자로 책봉하게 된다. 또한 통상적으로 왕가의 식구들이 병사하게 되면 담당 의관이 처벌을 받는것이 관례였으나 소현세자를 치료하던 의관 이형익은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았다.
이렇듯 인조의 아들 소현세자의 죽음은 아직도 역사의 미스테리로 남겨져 있다.

인조는 폭군 ?

일지매 드라마에서 비치는 인조의 모습은 백성을 돌보지 않고 아들마저 죽이는 잔인한 임금으로 묘사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들이 인조의 모든 면일까?
인조가 요즘 세상으로 치면 쿠테타로 왕이 되었으며 재위시 두번의 전쟁을 통해 조선 백성을 크나큰 곤경에 빠뜨리게 한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또한 당시의 국제정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무작정 숭명정책을 펼치다 백성들의 고통을 불러 온 것 또한 사실이다.하지만 이러한 사실로 인조를 무작정 폭군이었다고 매도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듯 하다.
숱한 난리를 겪으면서도 인조는 군제를 개편하여 총융청과 수어청을 신설하였으며 북방의 방위를 위해 곳곳에 진을 설치하기도 하였다.전란으로 피폐해진 농가를 살리기 위해 대대적인 토지조사를 실시해 세금제도를 합리화 하였다. 또한 이이,이원익의 주장을 받아들여 나라에 진상하던 특산물을 쌀로 대치하여 받게 하는 대동법을 실시 하였으며 송시열,송준길,김집,김육 등의 대학자, 대정치가가 배출되는데 밑바탕을 만들었다.
인조는 자신의 의지 보다는 당시 서인들의 추대에 의해 임금이 되었다. 임금이 된 이후에도 자신을 임금으로 만들어준 공신들을 무시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그래서 더더욱 나약한 임금으로 보여졌을 것이다.그렇게 본다면 인조역시 조선시대의 또 한명의 불행한 왕이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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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파주에 있는 인조대왕능 장릉>




Posted on 2008.05.30 15:24
Filed Under TV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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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에서 수,목요일 방영하는  사극 <일지매> 가 3회,4회를 거치면서 시청자들의 관심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무적의 낙하산 요원>을 연출한 이용석PD가 최란작가의 원작을 바탕으로 드라마를 제작하여 방영하고 있다. 주인공 일지매 역으로 <왕의남자>,<개와늑대의시간>의 이준기가 캐스팅 되면서 방영전 부터 화제가 됐던 드라마 이다.

일지매는 조선시대 후기의 인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실존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일지매의 내용은 조선 후기 순조 (요즘 MBC에서 방영하고 있는 이산 정조의 아들이다.)때의 문인 조수삼의 저작 <추재기이>에 그 내용이 짧게 언급되어 있다.

일지매(一枝梅)는 도둑 중의 협객이다. 늘 탐관오리들의 뇌물을 훔쳐, 먹고살 길 막막하고 죽은 자를 장사지낼 힘조차 없는 백성에게 나누어 주었다. 처마와 처마 사이를 나는 듯이 다니고 벽을 붙어다니니 날래기가 귀신같아서 도둑맞은 집에서는 어떤 도둑인지 몰랐다.
그리하여 스스로 붉은색으로 매화 한 가지를 그려 놓았다. 다른 사람이 의심받지 않게 해서였다.
매화 한 가지 증표로 남겨두고 탐관오리 재산으로 가난한 이 돕는다.
때 만나지 못한 영웅 예부터 있었으니 옛적에도 오강에 비단 돛 떠올랐었다.     <추재이기 중에서>

하지만 이 내용은 일지매에 대한 짧은 설명 일뿐 , 그가 실존인물인지 , 만약 그렇다면 이름은 무엇이고 어느지방의 사람인지등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일지매를 언급한 또 다른 문헌으로는 조선 후기의 문인 홍길주가 쓴 <수여연필> 이라는 문헌이 있다.

또 큰 도적 중에 일지매라 하는 자를 두고 어떤 이는 정익공 이완이 포도대장을 할 때 사람이라고 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장붕익이 대장 노릇할 때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정작 나중에 환희원가(歡喜寃家)라는 책 속에서 이를 보았다.                          <수재연필 중에서>


수여연필의 언급에 의하면 세간에 사람들이 일지매를 실제 인물로 여기고 그 실존연대를 이완이 포도대장을 할 때 (이완은 조선 효종때의 무신 입니다.) 또는 장붕익이 포도대장을 할 때라고들 하는데 실상은  청나라 초기 화본소설(설화나 민담을 엮은 소설집)인 <환희원가>에 있는 내용이라는 것이다.

조선 중기 이후 청나라의 많은 소설 문화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되는 데 일지매 이야기도 이 경로를 통해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일지매가 실존인물인지 아닌지는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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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초들의 삶이 힘들었던 조선 후기에 조선 팔도 어딘가에는 민초들을 위한 , 일지매를 닮은 의적이 한 둘은 있었을 것이기에 ..
누군가는 부자들을 미워하는 사회는 결코 발전할 수 없으며 , 그런 분위기가 만연하면 사회 구성원 모두가 가난해지는 길. 즉 하향평등으로 가는 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부자를 이유없이 미워하지는 않는다. 아니 오히려 부를 축척한 사람들을 따르려 부단히 노력한다. 하지만 이것은 그 부를 축척한 사람들이 정당한 방법으로 경쟁을 통해 획득했을 경우의 이야기 이다. <강부자>라는 말이 만연할 정도로 부의 축척의 정당성을 의심받는 다면 그들을 바라보는 일반 서민들은 어딘가에서의 일지매의 출현을 꿈 꿀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것이 사람들이 드라마 <일지매>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중에 하나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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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매를 다룬 작품들
우리나라의 작품들중 일지매를 다룬 작품으로는 고우영 화백의 <일지매>가 가장 유명하다.
고우영 화백은 민담으로만 전해 내려오던 일지매 이야기에 토대와 살을 붙여 민중의 영웅으로,의적으로 변모된 일지매를 재탄생하게 하였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일지매의 이미지는 대부분 고우영 화백의 작품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이 밖에도 조선시대에 관한 민담이나 설화, 각종 이야기를 다룬 작품에 일지매는 단골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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